[역경의 열매] 남진 (2) 서커스 열리면 수업 빼먹고 구경하며 따라다녀

아버지 반대에도 연극영화과 진학, 가수 되겠다는 말에 교사 어머니 충격

[역경의 열매] 남진 (2) 서커스 열리면 수업 빼먹고 구경하며 따라다녀 기사의 사진
남진 장로(오른쪽)가 서울 경복중학교 1학년 때 친구와 함께 사진을 촬영했다. 왼쪽 사진은 돌잔치 모습.
배우는 나의 또 다른 꿈이었다. 감사하게도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연극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음악과 함께 연극에도 빠져들었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서울에서 중학교를 마친 뒤 목포로 돌아와 목포고에 진학했다. 연극부에 가입해 연기를 배우며 크고 작은 무대에 올랐다. 전라도 콩쿠르대회에도 학교 대표로 출전했다. 아버지는 반대하셨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것도 영화배우를 꿈꿨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서커스가 유행이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게 쉽지않은 시절이었다. 서커스는 연극에 신파, 악극, 쇼, 국악, 마술까지 망라한 종합 엔터테인먼트였다. 고등학생이 서커스를 보러 갔다 발각되면 퇴학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서커스가 열리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러 갔다. 학교 수업도 빼먹을 정도였다.

노래하고 춤추며 코미디까지 하는 서커스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서커스를 보고나면 친구들과 함께 그대로 따라하곤 했다. 친구들은 똑같이 따라하지 못했지만 나는 달랐다. 그게 소질이었다. 어떤 작품을 봐도 신기하게 모두 기억이 났고 기가 막히게 흉내를 냈다.

가수 남일해의 쇼를 봤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빨간구두 아가씨’를 부른 남일해는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였다. 오직 그분만이 가수로 불렸다. 인기가수였던 남일과 이미자도 남일해에 비하면 무명에 가까웠다. 무대에선 남일해가 항상 마지막에 나와 노래를 불렀다. 이미자는 앞 순서였다. 최고의 스타가 공연의 마지막 순서를 장식하던 때였다.

쇼를 보러 다니는 나의 머릿속에는 온통 연극과 노래뿐이었다. 예능 말고 다른 분야에는 관심이 없었다. 교내 연극부에서는 극작가 차범석의 ‘시골’을 연습해 무대에 올렸다. 연극부를 좋아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콩쿠르대회에 나가면 학교마다 보름씩은 연습을 했다. 그럼 수업시간에 빠질 수 있었다. 공부하기 싫었던 나는 그게 좋아서 더 열심히 연극을 했다.

아버지(김문옥)는 집안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전형적인 옛날 어르신이었다. 국회의원, 목포일보 발행인, 정미주식회사 사장 등을 지낸 아버지는 늘 바쁘기도 했다. 공부를 싫어하는 내게도 별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2남7녀 가운데 여섯째로 장남이었던 나의 교육은 모두 어머니에게 맡겼다.

장남이 가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꽤 충격을 받으셨을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오직 공부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교사를 했던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았다. 담임선생님과 교무주임, 교감선생님까지 아들의 가정교사로 둘 정도였다. 당시 목포에서 교감선생님까지 가정교사로 둔 학생은 내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공부를 정말 싫어했던 게 틀림없다. 공부를 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정교사가 방문하면 자리에 앉아는 있었다. 하지만 금세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게 열정을 쏟았는데도 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어머니는 결국 장남의 공부를 포기하셨다. 대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도우셨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아프기 시작했던 아버지는 입원까지 하며 4년을 투병하셨다. 어머니는 아들이 걱정할까 봐 아버지가 아프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않으셨다.

정리=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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