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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없이 콜오면 업무 개시 전통적 ‘고용’ 틀이 깨진다

사용자·노동자 중간 ‘제3의 일자리’ 긱 이코노미·플랫폼 노동 개념 등장

사용자 없이 콜오면 업무 개시  전통적 ‘고용’ 틀이 깨진다 기사의 사진
프랜차이즈 피자집에서 배달 일을 했던 신모(32)씨는 1주일 전부터 배달대행기사로 직업을 바꿨다. 배달대행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콜’이 뜨면 신씨의 업무가 시작된다. 임금은 배달대행 앱을 운영하는 업체에서 주는 건당 수수료다. 그는 음식점, 배달대행 앱 운영 업체 어디에도 고용돼 있지 않다. 배달 일을 한 대가로 돈을 벌지만 그는 근로자도 아니고 자영업자도 아니다. 어정쩡한 회색지대, ‘사용자 없는 근로자’다.

사용자와 근로자로 구분되는 전통적 노동시장이 깨지고 있다. 제3의 일자리를 만드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임시직 경제)가 출현하고 있다. 즉시 응답 앱 발달에 따라 디지털 플랫폼에서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 일시적으로 근로계약을 맺는 게 긱 이코노미다. ‘플랫폼 노동’으로도 불리며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차량공유 서비스 ‘타다’, 배달대행 서비스 ‘배달의 민족’ 등이 빠르게 성장 중이다.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선 생산가능인구의 약 10%가 긱 이코노미에 종사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에선 사용자와 근로자의 경계가 흐릿하다. 배달 일을 하는 신씨 사례를 보자. 그는 일종의 근로자 성격을 지닌다. 고용은 ‘고객의 음식 주문→주문대행 업체→배달대행 업체→배달기사 호출’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다만 배달대행 업체는 신씨와 직접고용계약을 맺지 않았다. 음식을 주문한 고객이 사용자도 아니다. 신씨는 자영업자 성격도 갖게 된다.

결국 그는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중간지점에 서 있는 것이다. 때문에 플랫폼 노동자는 기존 노동법체계의 ‘우산’ 아래 들어가기 어렵다. 최저임금, 근로시간 규제, 산업재해보험, 단체교섭권, 노동조합 결성권 등을 적용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서 긱 이코노미의 양면성이 드러난다. 정규직과 풀타임 일자리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긱 이코노미, 플랫폼 노동은 대안 근로로 주목받는다. 한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노동 유연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반면 긱 이코노미의 노동 유연성이 기업에만 유리하게 작용하면 부작용이 나타난다.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저임금, 장시간 근로 등에 내몰릴 위험성이 높다. 실업, 산업재해 등을 대비한 사회안전망의 바깥에 있다.

갈수록 확산될 플랫폼 노동을 이대로 내버려둬야 할까.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용자 없는 근로자에 대한 책임소재가 공백”이라며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특별법 제정, 플랫폼 노동의 근로자 지위 인정 등을 다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선웅 쏘카 새로운규칙그룹 본부장은 “정부가 플랫폼산업에서 발생하는 고용 관계를 제3의 노동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규제로 가면 더이상 새로운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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