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 임금 실타래 풀 때… ‘통상’ ‘최저’ 기준부터 통일” 기사의 사진
60년간 이어진 낡은 노동체계가 변곡점 위에 섰다. 한계점에 도달한 근로기준법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호봉제(연공급)와 장시간 근로 아래에서 탄생한 기형적 임금구조는 걷잡을 수 없이 변질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 등은 뿌리를 건드리지 못한 채 가지만 치면서 또 다른 왜곡을 부른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 발전이라는 변수까지 가세했다. 기존 체계는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에 낀 ‘제3의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를 품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다만 한국 노동시장에서 임금과 근로시간 문제는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단번에 해결할 묘수가 없다. 현장의 혼란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충돌하고 있는 최저임금과 통상임금을 통일하고, 장기적으로 임금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플랫폼 노동을 확산시키고 있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임시직 경제)’에 획일적인 규제를 하지 말고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조언도 따라붙는다.

‘뿌리’는 통상임금

전문가들은 기형적 임금구조가 탄생한 이유로 기업의 임금·초과근무수당 인상 억제 욕구를 지목한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한국의 임금 체계는 1960~87년(1기), 87~98년 외환위기(2기), 외환위기 이후~현재(3기)로 나눠서 볼 수 있다”면서 “1기는 사무직 중심 연공급 체계, 2기는 생산직의 연공급 체계가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3기에는 연봉제가 확산됐지만 연공급 체계를 버리지 못한 ‘무늬만 연봉제’가 등장했다. 오 소장은 “특히 전두환정부 때 물가 안정을 위해 기업의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임금 가이드라인’을 시행했다”며 “기업들이 고성장에 따른 임금 인상 기대수준을 기본급으로 채우기에 한계가 있자 각종 수당을 신설했다”고 덧붙였다.

장시간 근무도 영향을 줬다. 오 소장은 “기업은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 산입범위에서 벗어나 있어서 시간외근무수당 등을 절약했고, 근로자도 어떤 수당은 근로소득 면제가 가능해 이를 선호한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도 “기업은 초과근무수당을 낮추기 위해 각종 수당을 신설했고, 노조도 단기적인 임금 인상 성과를 거두려고 수당 신설을 방관했다”고 말했다.

노사의 ‘임금 전쟁’

연공급 체계 속에서 ‘통상임금 발(發) 수당 신설’이 기형적 임금구조를 잉태한 것이다. 모호한 통상임금 개념은 혼란을 더 키웠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은 “정기적·일률적·고정성 충족이라는 통상임금 개념이 모호하다 보니 임금 항목마다 산입 여부가 제각각”이라며 “이를 법 개정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례마다 대법원 판례에 의존하면서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복잡한 구조는 어디까지 통상임금, 최저임금에 포함되는지를 두고 벌어지는 노사 간 전쟁을 촉발했다. 지난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이를 더 부추겼다. 통상임금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을 두고도 산입 여부를 둘러싼 다툼이 생긴 것이다. 최 전 원장은 “통상임금 정의에 대한 분쟁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자 최저임금 산입범위까지 곪게 됐다”며 “통상임금을 제대로 정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문제가 겹친 것”이라고 했다.

엉킨 실타래를 풀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임금 기준 통일밖에 없다고 말한다. 각각 쓰임새와 산입범위가 다른 2개 임금(통상임금, 최저임금)을 일원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유 전 청장은 “기업 입장에선 통상임금에 들어가야 하는 임금 항목은 적어야 한다. 동시에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임금 항목은 많아야 한다”며 “근로의 대가라는 측면에서 두 임금의 정의를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 소장과 최 전 원장 역시 “단기적으로 임금 구성 항목을 단순화해야 한다” “두 임금의 정의가 어긋나는 것은 당장 고쳐줘야 할 문제”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통상임금과 최저임금의 통일은 쉽지 않다. 두 임금에 산입되는 임금 항목이 제각각이라 노사 간 유불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유 전 청장은 “통상임금과 최저임금 통일은 노사 간 ‘주고받기’를 통해 한 테이블에서 협상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정부가 법 개정이 힘든 통상임금은 둔 채 시행령으로 최저임금 산입 부분만 일부 개편하면서 왜곡이 더 심해졌다”고 비판했다.

플랫폼 노동, 장점을 봐야

연공급 체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 소장은 “고성장·고출산 시대에 만들어졌던 연공급 체계가 저성장·저출산 시대에도 유효한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일본은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로 시작했지만 직능급으로 개편했고, 직능급이 사실상 연공급으로 변질하자 다시 역할급 중심으로 전환한 경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 전 원장은 “임금 선정 방식에는 4가지 기준(사람, 업무, 시간, 성과)이 있다”며 “사람과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현재 체계를 업무와 성과로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플랫폼 노동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 중간에 있는 플랫폼 노동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면 ‘중간지대’에서 발생하는 장점이 사라진다는 분석이다. 여선웅 쏘카 새로운규칙그룹 본부장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임금근로자가 받는 보호를 받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근로자로 분류해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플랫폼 노동을 규제하기보다 제3 일자리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제도를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긱 이코노미가 취약계층을 직접 고용하지 않은 채 각종 의무를 회피하는 식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근로자 성격을 인정하는 방안, 특별법을 만들어 적용하는 방안 등을 다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 본부장은 “새로운 사회안전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정현수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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