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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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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도 아닌’ 딸 셋이나 키워 30년 새 아들 선호 싹 사라져… 여아 선택 출산하기 위한 불법 낙태 재연될까 걱정

대학병원 분만실 앞. 간호사가 신생아를 보여주며 “공주님입니다. 축하합니다”라고 하자 아이 할머니는 “그래 하는 수 없지 뭐” 하고는 돌아서서 눈시울을 적신다. 옆에 있던 외할머니는 사돈 등을 토닥이며 “섭섭해도 어쩌겠습니까, 인력으로 안 되는 것을. 다음에 꼭 아들 낳으면 되지요”라며 손수건을 건넨다. 30년 전 큰 딸아이 출산 때 모습이다.

처음 아빠가 된 나도 내심 서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왕이면 아들이면 좋았을 텐데….” 그즈음 길가다 딸 둘 데리고 다니는 젊은 부부를 보면 속으로 “저 집은 딸만 둘이네”라며 조금 안됐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고는 3년 뒤 둘째 딸아이를 낳았고, 아들 욕심은 접었다. 그런데 수년 뒤 느닷없이 처가에서 압력(?)이 들어왔다. “후회는 하지 않게 하나만 더 낳아보는 게 어떨까.” 순전히 아들 낳을 목적으로 4년 터울로 셋째를 가졌고, 또 딸을 봤다. 당시로선 남들이 조금 안쓰럽게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시절엔 왜 그토록 아들, 아들 했는지 모르겠다. 자녀가 몇이든 아들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는 세상이었으니 젊은 부부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까.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쫓아내도 된다는(칠거지악, 七去之惡) 도덕률을 가진 나라의 후손이었으니 어쩌겠는가.

김영삼정부 시절 모 국무총리가 3명의 신임 차관급 인사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하다 4명 모두 딸만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됐었다. 일부 대화 내용이 신문 가십난에 소개되기도 했다. “저도 아들 낳아보려고 나름 노력했지요.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그때는 너나없이 아들 타령을 해 무척 힘들었지요.” “어른들이 딸자식은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남아선호는 어쩔 수 없었다고 봐야지요.” “언젠가 세상 바뀔 겁니다. 딸 가진 부모도 기죽지 않는 세상이 곧 올 겁니다.” “키우기는 지금도 아들보다 딸이 더 낫지요. 노후엔 아들보다 딸이 훨씬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고관대작들 사이에 이런 얘기가 오갔다는 사실 자체가 남아선호 현상이 상당했음을 뜻한다.

실제로 옛 어른들은 딸을 제대로 된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 했으니 키울 때만 내 자식이지 결혼 후에는 남의 자식이었던 셈이다. 아들이라야 혈육도 잇고 조상 제사도 모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다분히 유교문화 유산이겠다. 내 어머니는 기력이 괜찮았을 때 누나가 모시고 살았다. 명절은 아들 집에서 쇠는 게 좋겠다 싶어 모시러 가면 어머니는 “그래 설과 추석은 자식 집에서 보내는 게 맞지”라곤 하셨다. 당신한테 더없이 효도하는 딸이 자식이 아니라니….

불과 30년, 세상 참 많이도 변했다. 500년 이상 지속돼 온 남아선호 현상은 어느새 거의 퇴조한 듯하다. 환갑 바라보는 고향 친구들 중에 “너 아들 없어도 진짜 괜찮겠느냐”며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경우가 가끔 있긴 하다. 경상도 사는 아재들이다. 나는 그런 친구를 ‘꼴통’이라 부른다. 이런 극소수 목소리조차 얼마 안 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국가통계상 출산 시 남아선호는 진작 사라졌다. 출생성비(출생 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1990년 최고점을 찍어 116.5였다. 그해 셋째아이 성비는 193.3이나 됐다. 남아를 선택 출산하기 위해 낙태시술을 무척 많이 했다는 얘기다. 다행히 2007년 이후엔 105∼106선을 유지하고 있다. 셋째아이도 마찬가지다. 이 수치는 생물학적으로 한국인의 자연스러운 출생성비여서 평균적으로는 남녀 어느 쪽으로도 선택 경향이 없다는 뜻이겠다.

한데 요즘 들어서는 남아선호가 사라진데 그치지 않고 거꾸로 여아선호 시대가 왔음을 느낀다. 성인이 된 딸아이들과 이런 대화를 나눌 정도다.

-결혼해서 아이 갖게 되면 아들, 딸 중 어느 쪽이 좋을까.

“당연히 딸이지요.”

-확률은 반반인데 자꾸 아들 낳으면 어떻게 하지.

“아들 자꾸 낳을 일은 없어요. 첫째가 딸이면 하나 더 낳을 수도 있지만 아들이면 안 낳을 거예요. 아들 둘은 상상하기 싫어요.”

-남편이 굳이 아들을 원할 수도 있잖아.

“그런 간 큰 남편 잘 없을 걸요.”

삼구동성(三口同聲)이니 딱히 덧붙일 말이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여아선호 경향은 뚜렷하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족 의식조사에서 딸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응답자가 아들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응답자의 2배에 달했다. 젊은 부부들이 부계보다 모계 사람을 더 자주 만난다는 조사 결과와 일맥상통해 보인다.

30년 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여아선호. 아들 중심의 족보문화와 제사문화가 빠른 속도로 빛을 잃은 게 가장 큰 원인 아닐까 싶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그에 따른 가정에서의 발언권 상승이 연쇄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딸이 아들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굳이 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흐름이 자리 잡은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아들의 강점 또한 여전하기에 아들선호 분위기도 상당기간 혼재하리라 본다. 앞으로도 세상은 남성이 주도할 것이며, 자식으로서 든든하다는 느낌을 갖는 건 역시 아들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급격한 의식변화 기류에 비춰 볼 때 출산 시 여아선호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지 않을까 싶다. 그게 걱정이다. 30년 후를 생각해 보자. 여아를 선택 출산하려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다. 남아선호 때처럼 불법 낙태시술이 다시 만연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혼자만의 기우이길 바란다.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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