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조준모] 사회적 대화, 거품 빼자 기사의 사진
1997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때 미셸 캉드쉬 총재가 내건 조건 중 하나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였다. 김대중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설립해 입법 성과를 냈지만 이에 반발해 민주노총은 탈퇴하게 된다. 노무현정부 때는 노동계와 각이 세워져 노동계는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했다”고 비판했고, 정부는 노동계를 기득권 개혁대상으로 본 측면이 강했다. 이명박정부 때 사회적 대화는 역대급으로 무기력했지만 노사정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일 컸다. 박근혜정부 들어 9·15 노동개혁 합의를 이루었지만 다음 날 취업규칙 운영지침 등을 당청이 발표해 버려 한국노총은 합의 파탄을 선언했다. 당시 학계에서도 정부가 신뢰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많았다. 문재인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하며 사회적 대화 성과 도출에 기대가 컸다. 그러나 대통령이 참석한 광주 일자리 협약식에 노동계가 반발해 집단시위를 했고, 정부의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 강행에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원래 탄력근로제는 주52시간 규제가 만들어진 작년 2월에 동시 입법됐어야 하는 정부의 책임행정 사항이었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를 거치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도리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과 연계, 상한 시간 설정, 소득보전 의무화 등 탄력근로제도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하는 논의만 무성해 추후 입법이 물 타기, 생색내기로 변질될 우려가 커졌다.

이제 사회적 대화의 현실을 직시하고 거품도 빼자. 사회갈등의 해우소도, 쓰레기통 역할도 제대로 못했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경제, 사회, 노동의 제반 이슈로 범위를 넓혀서 포용국가의 소통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허장성세이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대화 수준도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사회적 대화는 노사자치로 결정해야 할 이슈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균형 있는 성과를 내길 바란다. 단결권 관련 ILO 협약 비준도 중요하지만 단체교섭, 협약 주기, 파업, 부당노동행위 등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혁하는 것도 중요하다. 노동기본권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공익을 위한 질서도 중요하며, 재직자의 근로조건 개선도 중요하지만 청년들의 고용창출도 중요하다. 최근 자동차 산업의 광주형 일자리 협약이 타결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모닝, 레이(동희오토), 스파크(한국GM) 등 기존 경차시장에서 과잉생산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평균 연봉 9000만원 전후의 현대차 임금구조로는 어차피 생산이 불가능한 차종이어서 현대차 노동조합의 반대 명분은 작다. 자동차산업에서 노사정 주체들이 참여해 수소차, 전기차 생산 등 미래 환경변화에 따른 산업단위 대화체도 출범한다고 한다. 기술의 고도화와 노동의 탈숙련·단순화가 완연한 현재, 생산성 동맹(productivity coalition)이라도 맺어 실천적 성과를 거두길 바란다. 이마저 실패한다면 사회적 대화 필요성을 거부하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할 자격은 없다고 본다.

현 정부의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위한 노동개혁 논의가 재등장할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해 일자리 창출을 늘리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이직이 두렵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계는 노동유연성 제고를, 노동계는 고용안정성 강화를 노동개혁이라는 동상이몽 식 주장을 하고 정부가 중간에서 뒷짐 지거나 노동조합 눈치를 보는 현실에서는 노동개혁은 성사되기 어렵다. 과거 노동개혁에 성공한 국가 사례들을 보면 정부는 책임행정을 다했고, 개혁 저항세력은 사회적 압력에 굴복해 등 떠밀려 합의했다. 사회적 압력은 불황과 일자리 부족에 대한 국민들의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지난 20년의 역사 속에 국민들의 절박함을 외면해 왔던 사회적 대화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또다시 정부 상대 떼쓰기, 수사학의 향연, 그들만의 잔치로 반복돼서는 안 된다. 공익을 배려한 사회적 합의를 하려면 노사관계가 지금보다는 더 성숙해져야 할 것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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