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극한 직업, 선한 배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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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 조리실에서 일하는 P씨는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산다. 매일 13명이 일반식 260인분, 분식 70인분을 준비한다. 서로 말 한마디 나눌 겨를 없이 분주하게 손과 발을 움직인다. 하루는 조리실에서 얼마나 걷나 궁금해 만보기를 차봤다. 그날만 1만3000보. 수면 부족으로 목소리가 안 나온 적도 있다. 먹고살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지만, 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지 못했던 지난날이 너무도 후회된다. 엄마를 잘 이해해주던 아이들이 간혹 “엄마, 그때 체육대회에 안 왔잖아”라며 엄마의 부재 순간을 끄집어낼 땐 마음이 편치 않다.

항공기 기내 청소를 담당하는 조업 노동자 J씨는 인천공항의 주기장으로 매일 출근한다. 비행기 한 대당 청소에 주어진 시간은 단 20분. 감독이 연발하는 “빨리빨리”를 들으며 난지도 같은 기내의 쓰레기를 비닐에 구겨 넣으면 100ℓ 봉투가 금세 찬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루 20차례 이상 기내 청소를 반복한다. 화장실 당번을 하게 되면 종일 1000개가 넘는 변기를 닦아야 한다. 하루에 15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연장근로만 90시간인 경우도 적지 않다.

영화 ‘극한 직업’이 천만 명 관람을 돌파하며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다. 영화 속엔 극한 직업의 현실은 없었지만, 영화 ‘극한 직업’보다 더 극한 직업에 종사하는 P씨와 J씨 같은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2018년 12월에도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스물네 살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가 밤샘 근무 중 기계에 끼여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날 그는 밤새 혼자 일했다. 그가 죽기 전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화력발전소는 24시간 돌아가야 했고, 위험한 야간 노동은 비정규직에게 떠넘길 수 있었으며, 비정규직에게는 비용을 아껴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곳을 이상하게 여기지도,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신정임 외 4인의 ‘달빛노동찾기’ 중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누리는 수많은 편의 뒤엔 사실 야간노동자들의 수고가 존재한다. 빌딩 청소노동자들의 야간노동이 있었기에 아침에 직장에 출근하면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고, 지하철이 모두 끊긴 새벽 선로에서 안전 점검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기에 출근길이 안전할 수 있다. 또 우편집중국에서 밤새워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에 전날 접수한 소포가 바로 다음 날 도착할 수 있다.

야간노동자들이 가장 서러울 때는 ‘ 사람 대접을 못 받았을 때’라고 말한다. “작업용 점퍼가 너무 추워서 쓰레기봉투용 파란 비닐을 뒤집어써야 할 때, 도시락 먹을 장소가 없어 쓰레기통 옆에서 밥을 먹을 때 서러워요.” “현장에서 안 자고 새벽에라도 집에 갈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지하철의 환풍구가 지상의 미세먼지와 매연을 역사 내로 빨아들이기 때문에, 지하철 내에서 잔다는 것은 유해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는 거니까요.”

사람은 인격적인 대우를 받았을 때 감동하고 에너지를 발휘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극한 직업도 좀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의 경영학자 황티에잉은 ‘대륙을 달군 훠궈 신화, 하이디라오’에서 중국식 샤부샤부 체인점 하이디라오의 성공비결을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한다’는 한 마디로 설명했다. 세심한 직원들의 서비스 정신이 거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훠궈를 먹을 때 안경에 김이 서리고 기름도 묻기 쉽다며 안경 닦는 천을 주거나 머리가 긴 여성 고객에게 머리를 묶을 수 있는 고무줄을 준다. 어찌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인데 신기한 것은 직원들의 진심 어린 태도에 있다. 황티에잉의 분석처럼 CEO가 직원들에게 양질의 복지를 제공하고 권한을 주면 직원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진심 어린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려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사랑이란 단어가 너무 흔해졌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만이 밤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돌볼 용기를 주고, 우리 자신을 돌아볼 용기를 준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요한1서 4:7). 지하철을 탈 때는 안전점검해준 누군가를,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때는 단체급식 조리원의 노고를, 화장실을 사용할 때 청소노동자의 수고를 떠올리는 것으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이지현 종교2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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