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경협 카드로 협상 숨통…  제재 완화 명분 만들기 기사의 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은 물론 경제협력 사업까지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밝힌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 대통령이 열거한 사업은 정부가 추진키로 하고 미국과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하던 사안인데, 갑자기 우리가 십자가를 지겠다는 식으로 주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런 언급은 그동안 미국에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하던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남북 경협을 아예 오는 27일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의제로 활용해 달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미국 내 대북 제재 완화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고, 대북 민간 투자가 개방될 경우 우리가 주도적으로 실리를 챙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경협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떠맡을 각오’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라고 표현한 것은 한국이 손해를 보고, 미국이 이득을 얻는 방안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실제 미국은 내부적으로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응조치를 내주는 데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남북 경협 재개는 미국이 금전적 손실을 보지 않으면서 북한에 경제적 상응조치를 줄 수 있는 방안이다. 경제적 부담을 우리 정부가 떠안는다면 미국은 자국 내 여론주도층이나 야당을 상대로 남북 경협을 대북 제재 예외 대상으로 지정하자고 설득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철도를 깔든, 도로를 깔든, 추가 투자를 하든 남북 경협의 산물은 추후 대북 제재가 해제됐을 때 고스란히 우리의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20일 “대북 제재가 해제된다면 미·중·러·일을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들이 북한 시장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며 “그 시기를 대비해 미리 대북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처럼 포괄적인 대북 제재 완화를 추진하는 대신 남북 경협을 상응조치 카드로 써서 일단 비핵화 협상의 숨통을 틔우자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도 통화 때 이 문제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제기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긍정적인 입장을 전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을 물었다”며 “문 대통령이 남북 경협과 철도·도로 연결 등에 대해 길게 입장을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를 해야 하는데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제안을 실제 베트남 하노이 회담에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는 대로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회담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한 것도 이 제안이 어떤 식으로 활용됐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때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진전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할 얘기가 많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를 고대한다”고도 했다. 양 정상은 정상회담 시기와 장소도 이미 논의했다고 김 대변인이 전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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