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때 미션스쿨 교사·학생 피해 컸다

기정추, 세미나서 당시 상황 공개

3·1운동 때 미션스쿨 교사·학생 피해 컸다 기사의 사진
임희국 장로회신학대 교수(오른쪽)가 21일 서울 중구 수표교로 영락교회에서 열린 기독교학교정상화추진위원회 학술세미나에서 3·1 독립운동 당시 미션스쿨 교사와 학생들의 피해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1919년 3·1운동 후 7개월 만에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는 전국 교인들의 잔혹한 피해 실태가 보고됐다.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미션스쿨 교사와 학생들은 유독 큰 피해를 입었다.

임희국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21일 기독교학교정상화추진위원회(기정추)가 서울 중구 수표로 영락교회에서 개최한 학술세미나에서 미션스쿨과 교사·학생들의 피해 실태를 자세히 공개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는 1919년 10월 4일 평소보다 한 달 늦게 평양에서 제8회 정기총회를 열었다. 총회가 연기된 건 3·1운동으로 투옥된 교회 지도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노회들은 만세운동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기록해 총회에 제출했다. 12개 노회 대부분은 교사와 학생들이 만세운동 현장에서 죽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한 사례가 있다고 보고했다.

황해노회는 “교사와 학생의 피해가 크다”고 기록했다. “독립 만세 사건으로 체포·투옥된 교사와 학생이 많다. 17세 학생 윤택진은 평양 감옥에서 고문으로 사망했다. 태형을 받은 교인이 80명인데 이 중 교사가 3명이다. 징역 6개월부터 2년까지 선고받은 교인이 85명인데 이 중 교사가 13명이다. 여자성경학교는 아직 휴교 중이다.”

평북노회는 “중학교 교실 34칸이 일제 헌병과 경찰의 방화로 소실됐다”고 보고했다. 산서노회는 중학생이 태형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중학생 탁창국 김명하는 의주 감옥에서 태형 90대를 맞고 치료받았으나 태형의 장독으로 사망했다. 중학생 최중원 김우식 김성길은 신의주 감옥에 갇혀 있다 태형 90대를 맞고 풀려났다.”

당시 일제는 수용시설 부족을 이유로 상당수 만세운동 참가자들에게 태형을 선고했다. 태형은 하루가 아니라 며칠에 걸쳐 가해졌다. 태형을 당한 뒤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거나 평생 장애를 안고 사는 이들이 많았다.

임 교수는 “만세운동 피해 상황을 보고한 노회 자료를 보면 모두가 유관순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서 “어린 학생들은 태극기를 흔드는 순간 어떤 극형이 찾아올지 알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희생을 감내했던 기독교가 100년 뒤 섬이 돼 버리고 말았다”면서 “신앙 선배들이 걸었던 길을 우리가 다시 걷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정추는 이번 학술세미나를 기점으로 전국 기독교학교와 교회학교들에게 ‘어둠의 시대 빛을 밝혀라, 191931의 비밀을 찾아서’란 제목의 교육 교재를 배포한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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