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잘해도 학폭·편견 시달려… 매년 1000여명 학업 중단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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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부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2부 : 공동체 균열 부르는 ‘신계급’>
<3부 : 한국을 바꾸는 다문화가정 2세>
<4부 : 외국인 노동자 100만명 시대>
<5부 :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법>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유재혁(16)군은 한국 학교를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학교 공부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유군은 필리핀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대신 한국어는 막힘없이 구사한다.

문제가 된 건 학교폭력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따돌림과 구타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끝나지 않았다. 같은 반 학생에게 맞아 덧니 2개가 부러진 적도, 구타를 피하려고 1주일 내내 무단결석한 적도 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리고 가해 학생이 전학을 가도 다른 학생들이 따돌림을 이어가는 식이었다.

유군은 “‘패드립’도 많이 들어봤다”고 털어놨다. 패드립은 ‘패륜’과 ‘애드리브’의 합성어로 부모 등 윗사람을 욕하거나 개그 소재로 삼아 놀리는 것이다. ‘엄마 없는 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가만히 맞고만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도 시작했다. 하지만 “참고 넘어갈 줄 알아야지 너까지 때리면 안 된다”는 선생님의 말은 다시 한 번 상처가 됐다. 유군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대신 대안학교 진학을 선택했다.

유군처럼 학교를 그만두는 다문화 학생이 매년 1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다문화 학생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관련 활동가들은 추정한다. 다문화 학생은 지난해 12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증가세에 있지만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등의 여러 제약에 한국 사회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교육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다문화 학생 10만9387명 중 1278명이 학업을 중단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청소년들 문제는 더 심각하다.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이 2015년 다문화·이주배경 청소년 현황을 조사해봤더니 고등학생 나이인 청소년 274명 중 49명만 재학 중이었다. 안산 자이언국제학교 최혁수 교장은 “정부는 중도입국 청소년이나 불법체류자 등을 제외하고 통계를 파악하므로 실제 수치보다 낮게 나온다”며 “실제로는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학업중단율이 몇 배로 뛴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한국 학교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어가 서툴고 기초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국동포 박모(52)씨는 “사춘기에 한국에 들어오면 아무래도 적응하기가 어렵지 않느냐”며 “매일 학교에서 0점 받고 꼴등만 하는데 선생님도 관심을 안 주니 학교 다닐 맛이 안 난다고 말하는 학생이 많다”고 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편견 섞인 시선을 견뎌야 한다. 중국동포 김모(41)씨는 “지금은 한국 국적을 취득했는데도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가족관계 서류부터 들여다본다”며 “일단 ‘중국 사람’이라는 틀에서 아이와 부모를 판단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학교 입학을 거절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지연 수원이주민센터 사무국장은 “지금은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2~3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는 전화를 하면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교육지원청에 전화를 하면 “안산에 다문화 학생이 더 많으니 거기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 “이 지역 학교는 학업 수준이 높아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돌려 말하는 경우가 빈번했다는 것이다. 이 사무국장은 “안 그래도 한국어 때문에 걱정이 많은 아이들인데 그런 말을 한 번이라도 들으면 의욕을 잃는다”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먼저 말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 겉돈다. 교육을 받지 못하니 한국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악순환이다. 외국인 비율이 높은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소년도 많다.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PC방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중국동포 강진수(가명·17)군은 “앞으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재연 구승은 최지웅 기자 ja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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