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남진 (10) 일본 오가며 영화 촬영… 연예인 세금 납부 1위

박춘석에게 받은 ‘지금 그 사람은’ 인기 얻자 라디오연속극·영화로… 극장 공연 땐 1000여명 서서 관람

[역경의 열매] 남진 (10) 일본 오가며 영화 촬영… 연예인 세금 납부 1위 기사의 사진
남진 장로(왼쪽)와 작곡가 박춘석이 1970년대 초 함께 찍은 사진. 박춘석은 남진의 히트곡인 ‘가슴 아프게’ ‘빈잔’ ‘지금 그 사람은’ 등을 작곡했다.
1960년대는 천재 작곡가 박춘석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부른 ‘가슴 아프게’ ‘빈잔’을 비롯해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기러기 아빠’ ‘섬마을 선생님’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장르도 넘나들었다. 그는 7세 때부터 피아노를 친 클래식 피아니스트였고 재즈도 연주했다. 피아노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 굉장한 선구자였던 셈이다.



나뿐 아니라 나훈아 패티김 문주란 하춘화 등 많은 이들이 박춘석의 곡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음악 산업의 양대 산맥이었던 오아시스레코드와 지구레코드의 전속 작곡가를 했다. 2700여곡을 작곡하며 국내 대중가요계에선 가장 많은 곡을 작곡한 이로 알려져 있다.

1930년생인 박춘석은 20대인 1956년 ‘비 내리는 호남선’을 작곡하며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그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라이벌이었던 민주당 대선후보 신익희 선생이 호남선 열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하며 ‘비 내리는 호남선’은 신익희 선생의 추모곡이 됐다. 이 때문에 박춘석은 경찰의 조사도 받았다. 정치적 탄압을 받은 것이다. 신익희 선생이 별세하기 3개월 전에 쓰인 곡이었기에 오해는 풀렸다.

1967년 나의 히트곡인 ‘지금 그 사람은’ 역시 박춘석이 작곡한 노래다. 이 노래를 바탕으로 라디오연속극이 제작돼 방영되기도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대에 대중들에게 라디오연속극은 인기가 많았다. 일본을 오가며 사랑을 쟁취하는 젊은이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

곡과 라디오연속극이 모두 성공하자 영화로도 제작됐다.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본을 가봤다. 당시 이례적으로 일본을 오가며 제작한 영화의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최근 이 영화가 TV에 방영되는 걸 우연히 보고는 나도 깜짝 놀랐다. 정말 오래전 영화다.

당시에는 연예인들의 세금 납부액이 중요 뉴스로 보도되던 시대였다. 1968년 나는 연예인 중 세금 납부 1위를 했다. 내가 낸 세금은 46만4000원. 삼양라면 한 봉지가 10원,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5원 하던 시대였다. 1인당 1년 소득이 100달러였을 때니 어마어마한 돈을 세금으로 낸 셈이다. 가수는 무대 공연 외에 별다른 수입원이 없던 시절이었다. 야간 업소도 거의 없었다. 나는 주로 영화에서 돈을 벌었다.

당시 공연은 현재 서울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서울시민회관에서 자주 했다. 서울에선 미아리극장 영등포극장 신촌극장 청량리극장 신사동극장 노벨극장에서도 공연을 했다. 지방에선 부산 보림극장, 대구 신도극장이 유명했다. 지방의 군 단위로만 가도 서울의 웬만한 극장보다 시설이 좋은 예술회관이 많았다. 서울에는 시설이 좋은 극장이 없어 오히려 지방이 부러웠다. 서울의 극장들은 좌석도 200석 정도여서 내가 공연할 때면 1000여명이 와서 서서 봐야 했다.

공연은 일주일 내내 이뤄졌다. 주말에도 쉬지 못했다. 요즘은 그렇게 일할 수 없다. 그때는 참 건강했던 것 같다. 어릴 때 잘 먹고 운동도 많이 한 게 지금 생각해도 다행이다. 술을 잘 못 해 거의 마시지 않은 것도 축복으로 생각한다. 술을 했다면 진작 가수로서 ‘아웃’됐을 것이다.

일찍 가수로 성공하고 고생을 안 해봤기에 경제관념이 없었다. 돈을 벌면 모두 어머니가 관리해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업을 도왔기에 돈 관리하는 법을 잘 알았다. 어머니는 내조의 능력자였다.

정리=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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