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에서도 대통령 임기가 중반으로 접어들면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이 문제가 됐다. 3년차에 들어선 이번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본보 취재에서 나타난 중앙부처의 풍토는 과거보다 훨씬 심각하다. 하급자가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네가 책임질 것이냐”고 상급자가 묻고, 하급자가 상급자의 업무 지시를 녹음하는 일이 관행이 되고 있다. 향후 문제가 되면 하급자에게 책임을 미룰까봐서다. 복원이 불가능한, 해외에 서버를 둔 모바일 메신저를 사용하는 공무원도 크게 늘었다.

간단히 말해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겠다는 소극적 행정이 퍼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현장 공무원들이 사실과 경험, 윤리에 바탕을 두고 판단 내리기를 꺼리는데 정책이 효과를 낼 수 없다. 정책 실패가 빈발할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은 다시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일부 공무원들의 일탈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대통령까지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각 부처 장관들에게 “적극 행정은 문책하지 않고 장려하는 기준을 세우고, 소극 행정이나 부작위 행정은 문책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 달라”고 지시했다. 결과가 잘못되어도 문책하지 않을 것이니 적극적으로 업무를 해달라는 부탁이다. 최재형 감사원장도 “공직자들이 사후적인 감사에 따른 불안감에 일하기를 주저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 컨설팅 제도’를 본격 운영하겠다”고 했다.

공무원의 기강 해이를 질책해야 하겠지만 여권의 잘못도 적지 않다. 적폐 청산의 대상과 기간이 한정 없이 늘어나면서 지시에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공무원까지 희생양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전 정권에서 잘나갔다는 이유만으로 부역자 취급을 받는 공무원도 많다. 더 큰 문제는 부처를 뛰어넘은 청와대의 독주다. 청와대가 정책 방향을 제시하되 구체적인 정책 방안은 부처 자율에 맡긴다는 상식은 교과서에나 있는 얘기다. ‘청와대 정부’란 용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핵심 현안을 부처 자율에 맡기는 게 아니라 청와대나 산하 위원회가 결정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시장과 현장이 아니라 이념이 우선하는 국정 기조에 좌절감을 호소하는 공직자도 적지 않다.

이번 기회에 사후적으로 정책 판단의 잘잘못을 따지는 감사원 ‘정책감사’의 폐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책 입안에 앞서 감사에 대비한 논리부터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현실에서 공직사회의 보신주의를 깨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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