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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증권가 연기 자욱한 ‘너구리 골목’… “제발 숨 좀 쉽시다”

사유지도 ‘금연구역’ 가능토록 영등포구, 조례 개정했지만 땅주인들, 금연구역 신청 기피

여의도 증권가 연기 자욱한 ‘너구리 골목’… “제발 숨 좀 쉽시다” 기사의 사진
27일 오후 1시, 서울 지하철 여의도역 3번 출구 근처 골목길은 정장 차림의 ‘증권맨’들의 담배 연기로 가득 찼다. 골목 양쪽 가장자리에는 수많은 담배꽁초와 담뱃갑이 나뒹굴었다. 이곳은 금융회사 9곳의 고층빌딩들 사이에 있는 이른바 ‘너구리 골목’이다. 항상 담배 연기가 자욱해 붙여진 별명이다. 골목 중간에 위치한 카페를 방문한 김모(26)씨는 얼굴을 찌푸리며 “골목에 들어오자마자 코, 입을 막은 채 흡연자들을 피해 걸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여의도의 골칫거리 ‘너구리 골목’의 간접흡연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다. 영등포구가 전국 최초로 사유지에서도 흡연 단속이 가능하도록 조례를 개정했지만 금융 회사들이 따라주지 않아 난관을 겪고 있다. 회사들은 너구리 골목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면 흡연구역을 따로 설치해야 해서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금연정책을 확대하면서도 흡연구역은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등포구는 지난해 12월 연면적 5000㎡ 이상의 대형 건축물이 속한 땅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영등포구는 “너구리 골목에서 담배 연기와 냄새, 꽁초로 인한 피해로 민원이 속출했지만 사유지에 해당돼 구청에서 단속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며 “건물 소유자가 금연구역 지정을 신청하면 단속 대상이 되도록 전국 최초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조례 개정 후 두 달이 지나도록 신청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영등포구 직원들이 지난달 초 금융회사들에 공문을 보냈고, 직접 회사를 찾아가 금연구역 지정을 신청할 것을 건의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은 너구리 골목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면 대안으로 흡연구역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흡연자들은 ‘너구리 골목마저 뺏길 순 없다’는 입장이다. 너구리 골목을 끼고 있는 회사들은 대부분 흡연구역을 갖추고 있지 않다. NH투자증권 정문 앞 등 세 곳에 흡연구역이 있지만 매우 좁다. 한화금융투자에 근무하는 이모(45)씨는 “우리 건물은 공간이 없어 흡연 부스를 못 만든다고 한다”며 “지금도 건물 주변 10m까지는 담배를 못 피우게 해 이 골목이 회사 건물 근방에선 마지막으로 남은 흡연 장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흡연구역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다보니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흡연구역을 늘리는 것”이라며 “정부가 금연 정책을 확대하면서도 흡연구역 마련엔 무관심해 나타난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흡연시설 설치 현황조차 모르고 있다가 지난해 8월에야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간집계 결과 서울시내 민간시설 등에 설치된 흡연구역은 6200여곳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정한 금연구역이 최근 5년간 15만5143곳 증가한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지자체에선 주민들이 민원을 넣는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흡연시설을 설치하지 않는다”며 “담배 연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흡연구역 시설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안규영 최지웅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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