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고려대에서 정년퇴임식을 갖고 교단을 떠났다. 지난해 11월 정책실장직에서 물러난 건 청와대에 들어간 지 18개월 만이었다. 이제 29년간의 교수 생활도 마무리했다. 퇴임식은 비공개였지만 퇴임사 몇 마디가 알려졌다. “저는 이상주의자입니다. 젊었을 땐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미래, 무지개를 좇아 다녔습니다. 현실에 뿌리 내린 이상주의자이고 싶었는데 보는 시각에 따라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세월이 흘러 무지개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감히 계속해서 철없이 무지개를 좇는 소년으로 살고 싶습니다.” 인생을 반추하는 자리였으니 청와대 시절만 염두에 둔 말이었을 리 없고 참석자들도 그런 뜻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상주의’란 말에서 그가 주도했던 소득주도성장을 떠올리고 있다. 발언을 접한 여론의 기류가 그렇다. 이를 탓할 수 없다. 정책을 좌우하는 공직이란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

그의 퇴임식을 둘러싼 이 해프닝은 정권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새겨야 할 메시지를 담고 있다. 퇴임사의 맥락에서 이상주의자란 말은 꽤 낭만적인 뉘앙스를 가졌겠지만 현실과 결부되는 순간 낭만은 증발해버렸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행간에 그의 이상이 개입돼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론적 확신이 있어 내놓았을 텐데 현장에서 나타난 결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만 확인해줬다. 소득이 높아져야 할 서민이 더 어려움을 겪었고 향상돼야 할 분배 정의는 거꾸로 퇴보했다. 이상주의의 최대 함정은 이상을 좇는 경직성에 있다. 숱한 경고음에도 제때 유연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 정권이 20여 개월을 보내며 얻었어야 할 교훈은 이것이다. 내가 가는 길에 대한 지나친 확신은 독이 되기 쉽다. 혹시 지금도 무지개를 좇고 있지는 않은지, 장 전 실장 퇴임사의 한 구절이 던진 파장을 곱씹으며 수시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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