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남진 (14) 리사이틀로 인기 치솟으며 ‘남진 시대’ 활짝

오늘날 대한민국 가요계 초석된 TV ‘쇼쇼쇼’ ‘토요일 토요일 밤에’ PD들이 리사이틀에 결정적 도움

남진 장로(왼쪽)가 1970년대 초 ‘쇼쇼쇼’ 진행자 곽규석씨와 함께 무대에 서 있다.

오빠 부대의 원조는 나이지만 ‘리사이틀’을 본격적으로 활성화한 것도 나였다. 한 사람이 공연 전체를 책임지는 독창회 격인 리사이틀이란 개념은 1960년대까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시는 여러 가수가 함께 공연을 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리사이틀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 방송의 역사에서 ‘쇼’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등장시킨 옛 동양방송(TBC) 황정태 PD다.



그분이 연출한 ‘쇼쇼쇼’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64년 TBC가 개국하며 시작한 쇼쇼쇼는 춤과 노래 코미디가 결합한 버라이어티쇼였다. 희극인이자 훗날 미국 뉴욕의 한마음침례교회 목사가 된 곽규석씨가 진행을 맡았다. 곽씨는 성대모사와 원맨쇼의 개척자로 코미디계의 큰 어른이다.

내가 리사이틀 가수로 서는 데는 황 PD의 역할이 컸다. 그가 나를 쇼하는 가수로 만들어 주었다. 황 PD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분은 밴드 음악과 무용 합창까지 무대 공연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를 모두 종합해 쇼를 만들어냈다. 그는 대한민국 쇼의 일인자라 불릴 만했다. 당시 직급으로는 평 PD에 불과했는데도 명성이 자자했다. 천재였다. 나같이 인기 있던 가수라도 그를 만나기가 어려웠다. 출연을 부탁한다는 것 자체도 불가능했다.

1971년 가을 서울 종로구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남진 귀환 리사이틀’은 황 PD의 작품이었다. 안무는 한익평씨가 맡았다. 나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이후 ‘남진 시대’는 그 리사이틀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조영남도 황 PD가 직접 찾아 방송에 출연시키며 스타로 만들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가요계는 그에게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요일 토요일 밤에’를 연출한 MBC 전우주 PD도 최고로 꼽을 수 있다. 전 PD는 대한민국 PD의 상징과도 같다. 실력만큼은 대한민국 최고다. 그는 극 작품을 잘 만드는 사람이었다. 혹자는 전 PD 같은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었다면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바뀌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오래도록 연예계에 몸을 담았지만 전 PD와 같은 이는 다시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참 희한한 일이다. 지금은 기술이 과거보다 엄청나게 발달했는데도 창의적 기획력은 따라가지 못한다. KBS홀을 한번 가보면 세상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촬영장이 운동장만큼 넓다. 그런데도 당시 느낌은 잘 안 난다. ‘토요일 토요일 밤에’와 ‘쇼쇼쇼’는 지금 돌아봐도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

카메라 잡는 기술도 예술이었다. 그때는 카메라 2~3대로 쇼를 만들었다. 극에 있어 천재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요즘은 카메라가 스무 대 넘게 움직여도 그때 느낌이 잘 안 난다. 환경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전 PD는 지난해 별세했다. 항상 그분께 감사하게 생각한다.

남진시대는 이런 분들이 만들었다. 천재적 PD들은 내면의 감춰진 진짜 재주를 보고 직접 스타를 고른다. 그건 연예인 본인도 모를 수 있다. 나도 나 자신을 잘 몰랐는데 그분들이 해보라 해서 따라 하니 잘된 경우가 많았다. 방송 레퍼토리라는 것은 방송을 오래 해본 사람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안무를 깔고 음악을 넣는 모든 작업은 예술과도 같다. 제작 과정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과정이다.

정리=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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