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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김준동] 春來不似春

봄기운 앗아간 미세먼지 공습… 숨 좀 제대로 쉬고 싶다는 처절한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기다리던 봄이 왔다. 쌀쌀했던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따스하게 내리비친다. 구석구석 쌓인 눈도 녹고 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이 어제였다. 바야흐로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다. 날이 풀리는 거리거리는 살아 움직이는 빛이 감돈다.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봄 정취는 여간 아름답지 않다. 봄을 맞는 것은 이렇게 늘 축복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봄이 봄답지 않아졌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할까. 봄 내음 가득한 개나리, 진달래의 향기보다 미세먼지라는 불청객이 먼저 창문을 두드린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뿌연 잿빛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벌써 몇 년째다. 달갑지 않은 미세먼지의 공습으로 거리는 온통 마스크행렬로 넘쳐난다. ‘3일은 추위, 4일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신조어 삼한사미(三寒四微)의 겨울 고통은 더욱 큰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1년 중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은 3월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3·1절 100주년 기념식이 열린 지난 금요일 서울 광화문광장은 1만5000여명의 인파로 가득했다. 경축 분위기가 넘쳐나야 하지만 마스크로 무장한 시민들의 얼굴에는 찌푸린 표정이 역력했다. 100년 전 태극기로 뒤덮였던 전국이 미세먼지로 뒤덮였기 때문이다.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광주 169㎍/㎥, 세종 166㎍/㎥, 대전 157㎍/㎥, 서울 82㎍/㎥ 등으로 ‘매우 나쁨’ 기준인 76㎍/㎥ 이상이었다. “100년 전에는 일본 식민 통치에 항거했지만 지금은 미세먼지에 맞서야 할 상황이 돼버렸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많았다. 5일에는 서울의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사상 최고치인 144㎍/㎥를 기록했다. 급기야 수도권과 세종, 충청 지역에는 사상 처음으로 6일 연속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회색빛 먼지층이 청정지역 제주도 예외 없이 삼켜버렸다. 관측 이래 최악의 초미세먼지가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유령도시를 보는 듯하다.

이런 고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중국에서 넘어오는 황사까지 덮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960년부터 지난해까지 월별 황사 관측 일수는 3월 82일, 4월 133일, 5월 73일 등으로 주로 봄에 기승을 부렸다. 올봄에는 황사 현상이 평소보다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중국의 공장 지대를 거치면서 카드뮴, 납, 니켈, 크롬 등의 중금속 성분까지 포함해 한반도에 닥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 농도가 동반 상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상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이다. 미세먼지 데이터 제공업체 에어비주얼이 발간한 ‘2018 세계 공기질 보고서-지역&도시 PM2.5’를 그린피스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초미세먼지 오염도 2위를 차지했다. OECD 도시 중 대기질이 가장 나쁜 100개 도시에 무려 국내 44개 도시가 이름을 올렸다. 어제는 서울, 인천이 세계 1, 2위로 공기가 탁했다. 그린피스는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대기오염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2060년 대기오염으로 인한 한국의 조기 사망률이 회원국 중 1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당국의 대책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난 수준으로 대응하라고 했지만 비상저감조치를 알리는 문자를 연일 날리고 가급적 실내에서 생활하면서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안내가 거의 전부다. 미세먼지가 단순히 먼지가 아니라 1급 발암물질이자 독성 화학물질이라는 경고가 쏟아지지만 시민들은 마스크를 쓰고 공기청정기를 마련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저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글로 갈수록 최악으로 치닫는 미세먼지 상황에 절망감과 답답함을 토로할 뿐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숨쉬기까지 힘들어지네” “이게 사람이 사는 나라냐” “저감 조치 아무리 하면 뭐하나” “이민이 답이다”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오죽하면 ‘맹모삼천지교’에 빗대 ‘맹모삼천지미(孟母三遷之微)’라는 말까지 나올까. 미세먼지가 일상이 되고 있는 나라. 숨 쉬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은 세상. 분노를 넘어 무력감에 빠진 시민들. 모두들 소망하면서 절박하게 외친다. “숨 좀 제대로 쉬고 살자.”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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