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노동이슈와 관련해 이해당사자 간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해결방식에 회의론이 적지 않다. 그럴 만도 하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를 둘러싸고 20년 세월 동안 내부적으로 다투다가 결국 불참으로 결론이 났다. 그동안 노사가 시원스럽게 결론을 낸 것을 찾기 쉽지 않다. 노사의 이해가 있는 노동 이슈와 관련해 정부가 당사자들과의 사회적 대화 없이 의사결정 하기는 어렵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눈치 보지 말고 밀어붙이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그들도 자기 이익이 걸려 있으면 정부의 일방적 결정에 반대한다. 지난달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탄력근로제에 대해 중요한 합의를 했다. 이번 합의는 주 최대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함에 따라 시간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향후 국회에서 여야 간 다툼의 소지를 줄여 입법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탄력근로제 합의 내용에 노사가 각각 불만을 가진 것도 합의가 노사 간의 손익균형적으로 이뤄졌음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따른 노동계의 건강 우려는 1일 11시간 연속휴식시간 보장이라는 안전장치 마련으로 불식할 수 있게 됐다. 탄력근로제 개정으로 연장근로수당 미지급에 따른 근로자 임금손실 우려에 대해서는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사용자들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함으로써 계절적 수요, 성수기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 1일 11시간 연속휴식시간 보장 대신 주 단위 노동시간 계산, 탄력근로제 시행을 위해 필요한 일별 노동시간에 관한 노사 합의 요건 완화도 탄력근로제 시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노사정의 탄력근로제 합의 내용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노동시간 지침 내용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다만 주당 평균 최대노동시간이 한국은 52시간이고 유럽은 48시간으로 차이가 있지만, 1일 11시간 연속휴식시간 보장의 경우 한국이나 유럽 모두 규정완화를 인정한다. 노사정이 모처럼 타협을 통해 탄력근로제 개정에 합의한 것은 향후 사회적 대화의 물꼬를 터준 것이다. 현재 대·중소기업, 정규·비정규직 간 분절된 노동시장 구조를 개혁하고 저성장·고령화의 환경에서 실타래처럼 얽힌 각종 노동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작지만 한 줄기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갈 길이 멀지만, 사회적 대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