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 급제동과 극단 우파 등장이라는 이중의 도전에 직면
‘태극기 우파’ 부상에는 사회통합 말하면서도 보수와 소통하지 않은 여권 책임도 커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반동을 극복할 때 우리는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간다. 폭압적 일제에 대항한 비폭력 저항을 통해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의 씨앗을 심고 민주공화국으로의 대전환을 마련한 3·1운동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기에 우리는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통해 평화로운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무대는 장대했고, 타이밍은 절묘했다. 만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동 합의문이 2월 28일 소위 ‘하노이 선언’으로 발표됐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 날 3·1절 기념사에서 밝힌 ‘신한반도 체제’ 구상은 엄청난 동력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언은 없었고, 미래에 대한 기약도 불투명하다. 극적으로 시작됐던 하노이 회담은 그렇게 극적으로 끝났다.

화려하게 연출된 스펙터클이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할 때 후유증은 심각하다. 그동안 과도하게 부풀려졌던 평화와 통일 담론에 가려졌던 냉혹한 현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제재완화’의 평행선은 좁혀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어렵사리 시작한 대화에는 불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더욱 커졌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협상이 더욱 복잡해졌으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잡하게 얽힌 국제적 이해관계 속에서도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문 대통령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그러나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로 문 대통령이 직면하게 될 더욱 커다란 위험은 통합과 협치가 실종된 국내 정치에 있다. 극단적 보수반동주의의 출현과 도전이 바로 그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시작된 2월 27일 개최돼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초우경화한 보수야당이 출범했다. 113석의 의석을 가진 제1야당의 ‘극단적 우경화’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새로운 정치적 현상이다. 극단적 우파의 등장은 중도성향의 합리적 보수가 설 수 있는 자리를 제거함으로써 정치지형을 더욱 더 양극화할 것이다. 집권 여당과 대립각을 세워 당권을 잡은 황교안 대표가 보수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할지라도 결국은 당권유지를 위해 극단의 길을 갈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이제 사사건건 충돌할 초우경화된 보수야당과 맞닥뜨린 것이다.

유럽에만 기승을 부린다고 생각했던 ‘극우’와 ‘우파 급진주의’가 우리나라에도 착륙한 것인가? 문재인정부와 집권 여당이 정치적 프레임을 덧씌우려는 것처럼 한국당은 정말 ‘극우 정당’인가? 작년 6월 지방선거 대패로 좀비가 됐던 보수 야당은 여전히 제대로 혁신을 하지 못한 채 ‘보수반동주의’로 연명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말한 것처럼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이념과 진영의 논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실현할 수 없다. 타협과 협치 대신에 대립과 갈등을 선호하는 보수반동주의의 등장은 그래서 위협적이고 위험한 것이다.

작금의 보수반동주의는 아직 극우는 아니다. 서양에서 극우는 대체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바탕으로 민주적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정치적 세력이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로는 우리의 우파 극단주의가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좌파는 우파보다 훨씬 더 민족주의적이며, 정치적으로 오용되는 심각한 인종주의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국의 보수를 특징짓는 핵심적 이데올로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반공주의다. 한반도가 분단돼 북한과의 적대적 경쟁 관계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한 남한의 보수 세력이 자신의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하고 오용한 것이 반공주의다. 촛불혁명으로 불안해진 소수의 보수세력은 반공주의를 복원해 잃어버린 기득권을 회복하려 한다. 반공과 독재로부터 자유로운 보수 혁신의 길은 멀어지고 보수 극단주의가 우리를 유혹한다.

문 대통령은 이제 이중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외적으로는 북·미 회담 결렬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구상이 흔들리고 있으며, 내적으로는 보수반동주의의 도전을 받고 있다. 보수반동주의의 탄생에는 물론 혁신하지 못한 보수의 책임이 제일 크지만, 사회통합을 얘기하면서도 보수와 소통하지 않은 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책임도 적지 않다. 자신들이 보기에 괴물 같은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친구처럼 대하면서도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해 헌신한 자신들을 정작 괴물처럼 취급하는 좌파세력에 대한 태극기부대의 분노가 보수반동주의를 키우지 않았는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위해 이념과 진영의 적대를 넘어서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하면서도 북한을 비판하거나 공산주의를 비판하면 친일파가 된다는 식으로 빨갱이를 언급하는 것은 또 다른 색깔론의 덫을 놓는 것은 아닌가? 사회를 양극화하는 극단적 이념들이 충돌하는 이 시대에 평화와 안정의 중도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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