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토 빼앗겼는데 외면하면 더 큰 죄”… 민족대표 중 3명이 담임목사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수표교교회

서울 서초구 명달로 수표교교회 본당 모습. 교회는 1984년 서울 중구 청계천 근처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수표교교회 제공

서울 서초구 명달로 수표교교회는 민족대표 3명을 배출했다.

민족대표 신석구 오화영 정춘수 목사가 이 교회 담임목사를 지냈다. 수표교교회를 상징하는 인물인 신 목사는 1918년 부임한 뒤 민족대표에 참여하면서 투옥돼 1919년 사임했다. 오 목사는 1927년부터 1년 동안 사역했다. 정 목사는 1935년 부임한 뒤 1936년 임지를 옮겼다. 목회자들의 임기가 짧았던 건 당시 감리회가 ‘목사 파송제’를 지켰기 때문이다. 총회의 명령에 따라 임지를 자주 옮긴 것이다.

이런 역사는 교인들에게 자랑거리다. 김진홍 수표교교회 담임목사는 6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분들이 우리교회 담임목사였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면서 “정 목사가 훗날 변절한 게 상처로 남았지만, 이 또한 엄연한 역사로 후손들에게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청계천 근처에 있던 교회는 1984년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 교회는 이전했지만 독립을 꿈꿨던 정신만큼은 보존하고 있다. 교회는 교회학교 학생들의 예배공간 앞에 역사 전시실을 마련했다. 이곳에는 민족대표들의 면면과 그들이 남긴 사료들이 전시돼 있다.

김 목사는 “교회학교 학생들이 오가면서 교회의 역사와 어둡던 시절 분연히 일어나 독립을 외쳤던 신앙 선배들의 정신을 배우길 바라며 전시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 목사의 흔적은 유독 뚜렷하다. 수표교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던 중 민족대표로 참여했고 이후에도 일제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교회만 돌보던 그가 민족대표에 참여한 계기도 눈길을 끈다. 신 목사의 비범한 성품을 알고 있던 오화영 목사가 1919년 2월 민족대표에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신 목사는 즉답하지 않고 기도를 시작했다.

“아무리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 해도 목사가 정치에 참여하는 게 옳은가” “목사로서 다른 신조를 가진 종교인들과 연합하는 게 맞는가”. 기도 제목은 두 가지였다. 2월 27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수천 년 내려오던 강토를 네 대에서 빼앗긴 것도 죄인데 이제 기회가 왔는데도 외면하면 더 큰 죄가 아닌가.” 응답을 받은 신 목사는 민족대표 중 서른세 번째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1929년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정치범 카드’. 신석구 목사는 이 카드를 갖고 다니면서 자신이 불온사상가임을 알리곤 했다. 국민일보DB

이 일로 그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2년 8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형무소에서의 삶은 가혹했다. 재판 중 검사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조선이 독립될 줄로 생각하는가, 출소 뒤 또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신 목사는 “독립은 될 줄로 생각하며 그날까지 헌신할 것이오”라고 답했다.

출소 뒤에도 일장기 게양과 태평양전쟁 전승 기원 예배, 신사참배 등을 거부하며 일제에 맞섰다. 충청도와 강원도, 황해도 등 부임하는 곳마다 반기를 들었고 재판을 받은 뒤 투옥됐다. 그는 결국 순교했다. 해방 후 평양에서 사역하던 신 목사에게 남한으로 탈출하자는 제안이 많았다. 하지만 “이 땅에 남은 양들을 이리떼 같은 공산당에 맡기고 어찌 이남으로 갈 수 있느냐”는 이유를 들어 제안을 거절했다.

공산당은 그에게 반동분자라는 혐의를 씌웠다. 공산당이 조작한 ‘진남포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1949년 4월 19일 평양형무소에 투옥됐다. 공산당은 신 목사를 회유했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1950년 10월 10일 후퇴하던 공산군은 그에게 기관총을 난사했다. 시신은 형무소 우물에 던져졌다.

정부는 1961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유해 없이 신 목사를 안장했다. 1963년엔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며 그의 정신을 기렸다. 신 목사의 신앙적 결단은 변절한 목회자들의 굴절된 삶과 비교되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수표교교회는 신 목사의 정신을 되살리는 요람이다. 김 목사는 “신앙인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신 목사님이 먼저 보여주셨다”면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라는 공동체성을 회복해 신앙으로 하나 되길 바란다”고 했다.

교회는 지난 1일 신 목사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 칸타타 ‘주를 위해’를 무대에 올렸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이 공연은 오는 10일 이탈리아 로마연합교회와 13일 독일 베를린 선한목자교회에서 이어진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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