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이필주·박동완 배출… 주요 인물 모두 끌려가 반년 넘게 문 닫기도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서울 정동제일교회

송기성 정동제일교회 목사가 지난달 8일 서울 중구 교회 앞마당에서 이필주 목사 사택터 표지판을 설명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3대 현순(1880~1968) 4대 손정도(1872~1931) 5대 이필주(1869~1942) 목사는 모두 독립운동가였다. 이 목사와 박동완 전도사까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2명을 배출했다. 담임목사와 전도사, 이웃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들은 물론 청년들까지 신앙으로 인도할 사람들이 모두 끌려가 반년 넘게 교회 문을 닫아야 했다. 100년 전 3·1운동으로 감리교 안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정동제일교회(송기성 목사)다.(국민일보 2월 14일자 31면 참조)

송기성 목사는 “정동교회가 일제 강점기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1919년 11월 6일 제12차 미 감리회 조선연회 때 경성지방 감리사 최병헌 목사님의 보고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정동제일교회 2대 목사였고, 초대는 한국에 복음을 전한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다. 최 목사의 보고는 이렇다.

“금년 3월 1일 조선독립운동으로 인하야 교역자 중에서 피수(被囚)되어 고초를 당함으로 교회 사업이 건둔하오며 간신히 후보자로 대리하면 오래지 않아 또 잡히어가고 청년 학생들은 탐정의 기찰과 수색의 심함을 인내치 못하야 어디로 도망하였는지 알지 못하며 강도자(講道者)가 없으니 실로 답답한 사정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주일예배에 인도가 없음으로 교우들이 기도만 하고 폐회한 일도 있으며, 정동교회에 이르러서는 3월 1일에 이필주 목사와 박동완 전도사가 감옥에 갇히고 그 후에는 정동교회의 동량(棟樑)과 같은 김진호·정득성 양씨가 잡히어가고 배재학당 생도들과 이화학당 교사와 생도들이 다수 감옥에 끌려가 교우는 흩어지고 인심은 험악하야 봄부터 가을까지 저녁 집회를 정지하였다.”

1918년 벧엘예배당 안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며 파이프 뒤편 송풍 공간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 유인물이 제작됐다. 송지수 인턴기자

정동교회의 ‘대들보’ 같은 존재로 소개된 김진호(1873~1960) 전도사는 경북 상주 출신이다. 서당 훈장을 하다 1905년 을사늑약을 접하고 예수를 만나 교회에 적을 둔다. 배재학당에서 한문과 성경을 가르치며 정동교회 소속 전도사로 일했다. 김 전도사는 1919년 3월 1일 정오 종각에서 측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해주고 배포하게 했으며, 오후 2시에는 이필주 목사의 책상 위에 있던 독립선언서를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대사관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김 전도사는 또 3월 중순 이후 대규모 시위가 불가능해지자 유인물 제작에 몰두했다. ‘조선독립신문’ ‘경제적 공약’ ‘조선국민과 학생이 분발하여 일어서는 것이 불법 행동인가’란 제목을 담고 있었다. 김 전도사는 결국 출판법·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경성지방법원에서 김 전도사는 “피고는 위 운동으로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란 질문에 “그 일을 나는 잘 모르며 하나님의 도움이 있으면 독립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정동제일교회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유관순(1902~1920) 열사다. 유 열사는 이화학당에 입학할 때부터 주일마다 정동제일교회 예배에 동급생들과 함께 참석했다. 정동제일교회 125년사는 “손정도 목사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민족 독립을 향한 열정, 그 뒤를 이은 이필주 목사의 독립정신과 민족주의 의식 속에서 유관순의 민족의식과 애국심이 크게 자라났다”고 서술했다.

유 열사는 1920년 3·1운동 1주년 기념 옥중만세시위를 주동한 뒤 고문과 악형으로 병이 깊어져 그해 9월 28일 감옥에서 사망했다. 같은 해 10월 12일 이화학당에서 유 열사의 시신을 넘겨받아 수의를 입혔으며 10월 14일 정동제일교회에서 김종우 목사의 집례로 장례식이 거행됐다. 일제의 감시 아래 가족과 학생 대표 몇 명만 참여한 쓸쓸한 자리였다고 교회는 전한다.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교회 탄압은 격심해졌다. 감리교단의 경우 1917년 2만680명이던 성도 수가 1920년에는 1만8193명으로 줄었다고 보고됐다. 특히 정동제일교회는 같은 기간 2283명에서 1119명으로 성도 수가 절반 이상 감소했다.

송기성 목사는 “100년 전 신앙 선배들이 민족과 역사 앞에 보여준 희생과 헌신을 반추하고 과오도 돌이켜보며 한국교회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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