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남진 (17) ‘나훈아 피습’ 배후로 지목당해 검찰 조사받아

범인은 사건 전 집에 찾아와 흉기로 위협하며 돈 달라 협박, 야단치고 보내…7년 뒤엔 고향집 방화

남진 장로(오른쪽)와 가수 나훈아가 1970년대에 함께한 모습. 남 장로는 1973년 나훈아 피습 사건의 배후로 오해 받아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1973년 6월 4일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서울시민회관 무대에서 나훈아가 피습을 당했다. 쇼가 끝나갈 즈음 나훈아가 세 번째 앙코르곡 ‘찻집의 고독’을 부르고 있을 때였다. 무대 위로 갑자기 뛰어든 김웅철이 깨진 사이다병을 휘둘러 나훈아의 왼쪽 얼굴에 큰 상처를 입혔다. 72바늘이나 꿰매는 대수술을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나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나훈아와 라이벌인 내가 그의 범행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나의 팬들과 나훈아의 팬들이 서로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지검 특수부장을 독대했다. 서울지검 청사가 중구 덕수궁 근처에 있을 때였다. 검찰이 김씨를 조사한 이후였다. 특수부장과의 독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를 알고 지냈다는 그의 진술이 거짓임이 단박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수부장은 내게 사과하고 김씨를 구속했다.

나훈아가 피습 당하기 며칠 전 김씨는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있던 내 집을 찾아왔다. 새벽에 눈을 뜨니 흉기를 들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나훈아를 찌를 테니 돈을 달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무엇보다 겁이 났다. 자고 일어났는데 모르는 사람이 흉기를 들고 서 있으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때만 해도 베트남전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돼 간이 클 때였다. 야단을 친 뒤 김씨를 돌려보냈다. 그 후 나훈아가 피습을 당했다.

배우 신성일의 매니저가 최근 TV방송에 나와 그 얘기를 했다. 김씨가 우리 집을 찾아오기 전에 신성일의 집에도 여러 번 찾아갔다고 한다. 신성일에게 돈을 요구했고 신성일은 사고가 나는 걸 방지하고자 용돈을 몇 차례 줬다. 그런데도 계속 찾아오니 경찰을 불렀고 다툼이 일었다. 김씨는 그 후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 사건을 두고 언론은 숱한 억측과 모함을 쏟아냈다. 내가 그에게 돈을 줬다느니 하는 기사까지 나왔다. 하지만 단언컨대 단 1원도 주지 않았다. 불쌍해서라도 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어넘길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 어떤 일도 쉽사리 넘어갈 수 없었다.

막상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억울하기보단 무섭다. 유명세가 있다는 건 이런 무서운 일에도 휘말릴 수 있다는 얘기다. 김씨는 정상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북을 넘나드는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사회에 대한 반항심이 있었다. 연예인을 공갈하면 돈이 나올 줄 알고 신성일과 나, 나훈아를 차례로 협박한 것이다.

그는 1980년 목포에 있는 내 고향 집에도 불을 질렀다. 그때 조부모의 유일한 초상화가 탔다.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리울 때가 있지만 초상화가 없어서 볼 수가 없다. 나이 들어 생각하면 협박받은 일보다 초상화를 잃은 게 더 화가 난다. 다시는 그분들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세월이 지날수록 가슴이 아프다.

30여년 전 지인으로부터 그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들었다. 교회에서 좋은 반려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식도 낳고 잘살고 있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신앙인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여성을 만난 것 같아 나도 기쁘다. 신앙은 대단하다. 세상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전과자도 변화시키는 신앙은 축복이고 사랑이다.

정리=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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