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고통의 극지에서 시대 혼이 보인다


얼마 전 정호승 시인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시 특강을 받았다. 일찍이 우리 교회에서 열린 토요 인문학 강좌 강사로 와서 특강을 한 적이 있지만 그런 일반적인 강의가 아닌 그만이 갖고 있는 시 창작의 비기를 깊이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 창작의 지름길은 없다며 시를 쓰는 것이야말로 고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30분 이상 계속 시를 쓰기 위한 자신의 고통을 토로했다.

시작을 위한 메모 과정부터 그것을 시로 옮기고 다시 수정하고 또 수정하면서도 이 시가 과연 얼마나 독자의 심금을 울릴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것이다. 시는 고통으로 시작해 고통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언제쯤 시 쓰기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한다는 것이다. 내게도 사람의 마음을 더 감동시키고 시의 꽃밭을 이뤄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통의 극지를 경험하라고 주문했다.

대중가수 이선희도 그의 클라이맥스 콘서트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무대에 올라오기 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요. 늘 조심하고 마음을 졸이는 것이 있어요. 그러나 그 긴장감과 조심하는 것을 놓아버리면 실수할까 봐 더 조심하고 놓지를 못합니다. 그럴 때면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저의 노래를 통해 팬들이 힐링 받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더 절제하고 조심하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청중이 힐링된 모습을 보고 열광적 앙코르를 받으면 지금까지 힘들었던 것이 눈 녹듯 다 녹아 버리고 저도 힐링 받는 것을 느낍니다.”

정 시인과 가수 이선희가 아름다운 시와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고독한 사막을 걷고 고통의 강을 건넜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동안 얼마나 고통과 아픔, 외로움의 눈물이 있었겠는가. 현대 사회는 철저한 개인주의와 편의주의에 빠져 있다. 그래서 자신과 관계된 일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고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최근 국민일보와 국민일보목회자포럼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무관심한 사회의 한 단면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교회 목회자 중 공적 교회를 지향하거나 사회와 교회 연합, 일치를 만들어 내고 대사회적 리더십을 행사할 지도자를 묻는 질문에 성도 62.1%, 목회자 74.2%가 ‘없음·모름·무응답’이라 답한 것이다. 주변 분들 중에는 내가 그 중심에 선정됐다고 문자를 하거나 연락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 그리고 공적 사역과 대사회적 리더십에 대해서는 아예 무관심하거나 모르쇠로 이루어진 시대처럼 느껴져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만큼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가 돼버린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지금 한국교회는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인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는 것 같다.

목회 생태계가 위협을 받든, 교회가 분열하고 공격을 당하든, 그에 대한 고민과 아픔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교회의 위태로운 현실과 미래에 대해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한국교회 초대 지도자들은 목회의 영역을 민족과 국가로 확장해 3·1운동에 앞장섬으로써 교회 부흥의 초석을 마련했고 교회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공적 사역의 혜안을 갖고 스스로 고통의 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교회라는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우리도 시대와 교회의 아픔을 느끼며 고통의 광야로 가자. 나무 한 그루 없고,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없는 극지에서 손으로 흙을 파고 파서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는 자에게만 시대 혼이 보일 것이다. 물론 그 길은 고독하다. 아무도 모르는 길이고 무관심한 길이다.

유관순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항거’에 나오는 대사를 아는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그럼 누가 합니까.” 우리도 시대적 대의를 가졌으면 소쩍새 울음 가득한 고통의 골짜기를 찾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교회의 봄을 오게 하는 한 송이 꽃을 피워 낼 수 있을 것이다.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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