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혁은 여야의 대국민 약속이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키로 하는 등 선거제도 개혁 관련법안을 1월까지 처리하기로 합의했었다. 그것이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당무 복귀 명분을 주기 위한 것이었든 아니었든 여야의 공감대는 이뤄졌고 국민 또한 믿었다.

실제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로 한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주를 이뤘다. 민주, 바른미래, 민주평화, 정의당은 각 당의 안을 토대로 협상에 임했으나 한국당은 예외였다. 뚜렷한 이유 없이 공식입장 발표를 계속 미뤄 왔다. 그러다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이 민주당이 제시한 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 안에 의견 접근을 보고 이를 신속처리안건 지정절차(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하자 부랴부랴 독자안을 냈다. 현재 300명인 의원 정수를 27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폐지하자는 게 핵심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하려는 근본 이유는 국민의 지지만큼 의회 권력을 배분하는 데 있다. 소선구제와 비례대표가 기형적으로 적은 현행 선거제도는 표심의 심각한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례로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51.4%의 득표율로 대구·경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방의회 의석의 절대 과반 의석을 장악했다. 이 같은 표심의 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역구 200석·비례대표 100석을 제안한 바 있다.

한국당 안은 한마디로 선거제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진정성이 의심된다. 비례대표 폐지는 실현 가능성이 영(0)에 가깝다. 의원 정수 축소 또한 국민의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생색내기용 제스처에 불과하다. 더욱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의원내각제 개헌과 연동한 것은 내년 21대 총선을 현행 선거제도로 치르겠다는 고백이다. 충분한 당내 의견 수렴을 거쳐 나온 안인지도 의문이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상정을 막기 위한 꼼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다. 그래서 한국당 지적대로 지금까지 여야 합의로 처리해온 게 관례였다. 공정성 시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국당이 이를 빌미로 계속해서 선거제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면 패스트트랙은 불가피하다. 선거제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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