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목사

“교회란 결국 생명공동체 아니겠나. 서로가 생명의 기운을 주고받고 하는 기화(氣化)의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 그의 말은 계속됐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아픔을 껴안고,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함께 배우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예배의 본질이 아닐까.”

교회에 대한 기존 이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고 주류 신학에서는 낯선 단어들의 등장이었다. 생명공동체로서의 모임은 그렇다면, 어디에서나 가능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이 된다.

이러한 생각은 1997년 출간된 문동환 목사님의 ‘생명공동체와 기화교육’이라는 저서에 담긴 것이기도 했다. 교육 신학자이자 군사독재와 맞서 치열한 운동가로 살아오신 분의 육성에 깊은 울림이 출렁였다. 1921년생이시니 만 70세가 되던 1991년 문 목사님은 민주화운동과 정치의 삶을 접고 미국 뉴저지에 정착해 당시 내가 목회하던 길벗교회에 출석하셨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문동환 목사는 1975년 한신대에서 해직돼 동료 해직교수와 함께 갈릴리교회를 공동목회했다. 당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안병무 서남동 문동환 이문영 교수 모습(왼쪽부터). 국민일보DB

“이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 길벗이 되어 함께 살아갑시다”를 앞세웠던 나와 뜻이 그대로 맞아 우리는 공동목회자처럼 지냈다. 이미 오래전 알고 있었으나 서로의 인연이 본격화됐던 출발이었다. 인생 후반기는 분주했던 공적 인생을 마무리하고 오랫동안 한국에서 이방인 생활을 해온 미국인 부인 페이 문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하고 삶의 현장까지 바꾸신 뒤였다. 본인으로서는 무수한 동지들을 두고 떠나온 외로운 선택이기도 했다.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의 현실은 고달프고 힘겨우며 아무리 오래 살아도 백인들의 나라에서 여전히 주변을 맴도는 이방인이다. 이 경험은 2012년 출간된 문 목사님의 저서 ‘바벨탑과 떠돌이’로 나온다. 아흔을 넘기신 나이에 또 하나의 책을 내신 것이다.

당시 그는 연로하셔서 딸 영미와 함께 지내느라 귀국하신 상태였다. 이 책을 내시기 전, 문 목사님은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 있던 내게 초고를 보내 검토를 부탁하셨다. 문 목사님은 이때뿐 아니라 수시로 정치와 경제, 역사에 대한 책을 나에게 수소문하며 구하셨고 책을 읽고 끊임없이 토론하셨다. 어찌 청년 같으실까. 경이롭고 신비했으며 날로 더더욱 존경스러웠다. 늘 겸허하게 배우고 또 배우시는 자세였다.

원고는 명료했다. 교회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들의 삶이 바뀌기 어려운 까닭은 이미 그의 삶 전체를 쥐고 있는 ‘바벨’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물적 지배구조가 강력하게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었다. 이런 시대와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면서 ‘떠돌이’의 고난과 비애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떠돌이는 그저 무력한 유랑자들이 아니라, 이런 고통을 통해 바벨의 논리와 지배에 저항하고 이로부터 탈출해 새로운 각성과 삶의 방식을 스스로 깨달아 살아가게 된다는 논지였다. 새로운 ‘출애굽 선언’이었다. 책을 출간할 때 추천의 평도 써달라고 부탁하셨다. 참으로 송구스러웠지만 영광이기도 했다.

마지막 저서는 94세가 된 2015년 ‘예수냐, 바울이냐’였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 신학의 머릿돌인데 그걸 정면으로 비판했던 것이다. 바울에게는 살아 움직이는 역사가 없고 기존 질서를 비판하지 않는 신학적 관념이 과도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 목사님의 마음과 영혼은 현실에 눌려 힘겨운 존재들에게 온통 가 있었고, 이들에게 어떻게든 힘이 되는 길을 발견하기 위한 고투로 자신의 생애를 마지막까지 채워나갔다. 그것은 곧 예수의 삶이기도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역사 속에서 살아온 문 목사님, 이제 그 길을 우리도 따른다. 평안히 가소서. 병석에 누워계신 채 반갑게 웃으시며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비추시던 모습, 그립다.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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