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해 재판을 받았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당시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뇌물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1996년 법정에 선 지 23년 만이다. 이번에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故) 조비오 신부의 증언이 ‘악의적인 주장’이라며 조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전씨의 주장은 지금까지 밝혀진 객관적 사실과 다르다.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해 2월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특조위 조사 결과와 국가기록원 자료, 형사사건 수사·공판 기록, 다수의 참고인 진술 등을 확인해 같은 결론을 내리고 전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전씨는 12·12 하극상으로 군권을 장악했고 이듬해 5월 광주에 계엄군을 투입해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끝에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의 우두머리다. 이로 인해 김영삼정부 때인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구속 기소됐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59억원이 확정됐다. 정부는 1997년 5월 5·18을 법정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매년 기념식을 열고 있다. 그런데도 전씨는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사실을 왜곡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해 왔다. 이러니 추종자들까지도 객관적 사실까지 부인하며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날도 서울 연희동 전씨 집 앞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5·18은 내란 폭동’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된 폭동’이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자유한국당에서 5·18을 폄훼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전씨는 회고록 건으로 지난해 5월 재판에 넘겨지자 알츠하이머 등을 핑계로 법정 출석을 회피하다 강제구인영장이 발부되자 마지못해 법정에 나왔다. 하지만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라는 5·18 피해자와 유족들의 요구를 저버리고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이번 재판은 전씨가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끝까지 거부한다면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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