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본사 직원이 지난해 10월 위탁업체인 한전고객센터 소속 비정규직 상담사와 업무지시를 주고받는 사내 메신저 화면. 한전고객센터노조 제공

공공기관인 한국전력공사가 10년 가까이 위탁업체 한전고객센터 근로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내렸던 정황이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원청이 위탁업체 직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은 불법파견 소지가 높다. 한전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 중 위법성 문제가 제기되자 업무를 지시하던 사내 메신저를 차단했다. 한전 측은 보안 때문이라면서도 “일부 직원이 업무지시를 내린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국민일보가 11일 입수한 전력노조 한전고객센터지부 내부 문건에는 2011년부터 지난해 12월 20일까지 한전이 고객센터 근로자에게 내린 다양한 업무지시 사례가 망라돼 있다. 한전은 지사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를 고객센터에서 하도록 지시하거나 고객센터의 응대율·휴가인원·잔무관리 등을 직접 문자로 보고하게 한 기록도 있다. 지난해 태풍 예보 상황에선 ‘태풍 시 비상근무 대기’를 위탁사를 통하지 않고 지시했다. ‘이사 정산 시 이중수납분 보류처리건은 콜센터에서 직접 해도 된다면 처리’라는 지침도 보인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파견업무가 아니거나 파견 허가를 받지 않고 직접 지시를 내리는 것은 모두 불법파견이다. 고객센터노조 측은 한전 직원에게서 이 같은 방식으로 상시적인 업무지시를 받아 왔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불법파견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무법인 원의 이진우 노무사는 “용역·도급이면 사용업체의 지휘·감독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용역 근로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내렸다면 불법파견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채준호 전북대 경영학부 교수도 “메신저 사용은 적절치 않고, 위장도급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고객센터 콜센터 직원들은 이를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협상 과정에서 비정규직이 한전 정규직과 동일 업무를 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한전 측도 위법성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지난해 12월 20일 고객센터 직원에게 업무지시 등을 내리던 주요 수단인 사내 메신저 ‘커뮤니케이터’를 차단했다. 한전의 ‘위탁회사(검침·고객센터) 커뮤니케이터 사용 중단 알림’ 공문에는 “커뮤니케이터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한 보안 취약성과 위탁계약의 적정 이행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 사용을 중단한다”고 적혀 있다. 불법파견 소지를 인정한 셈이다. 한전 측 관계자는 “메신저 차단은 보안 문제 때문”이라면서도 “일부 직원이 커뮤티케이터로 중계하는 과정에서 업무지시를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탁계약 문제’에 대해서는 “법무법인에 자문하니 그럴(위법) 개연성이 있어 차단했다”고 덧붙였다.

고객센터는 2006년 3월 아웃소싱으로 한전에서 분리되면서 생겼다. 2010년 한전이 인원 감축을 한 뒤로는 점진적으로 한전의 업무를 떠맡게 됐다.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한전 정규직과 사실상 동일한 업무를 하게 됐지만 처우는 열악해졌다”며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한전은 동일 업무가 아니며 직접고용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신 자회사를 설립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고객센터 노조는 이 경우 소속만 한전 자회사일 뿐 열악한 노동 환경은 그대로일 수 있다고 걱정한다. 자회사 대표가 한전 고위직의 퇴직 후 자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영환 한전고객센터 노조 부위원장은 “고용 안정이나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는 일절 없다”고 주장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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