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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동심 교육과 한·미 교육파업


사립유치원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개학 연기 투쟁’을 벌인 지 하루 만에 이를 철회하더니 당국이 이 단체의 설립 취소 절차에 들어갔다. ‘교육자로서 초심을 잃은’ 개학 연기와 반복적 집단 휴원, 폐원 선언이 학부모와 원생을 볼모로 해 공익을 해쳤다는 것이다. 학부모들도 “최소 2만3900명의 아이가 헌법상 교육권과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이 단체를 고발했다.

마침, 미국에서도 학교 교사들의 파업 소식이 들려왔다. 새해 들어 오클라호마, 애리조나, 켄터키, 콜로라도, 노스캐롤라이나, 캘리포니아 등 다수의 주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로스앤젤레스시는 64만명의 공립학교 학생들이 등록되어 뉴욕시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교육구다. 지난 1월 교사들이 이곳에서 파업에 나섰을 때 학부모들의 반응은 국내와 달리 파업 교사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다. “선생님들이 요구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기 때문에 파업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한유총 사태를 목격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선뜻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수시로 교사 파업이 뉴스로 올라오고 있다. 지난 1987년 일리노이주에서는 무려 8개월간이나, 2002년에는 오하이오주에서 두 달 넘게 교사들이 파업을 벌였다. 미국은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는 곳이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파업도 사회가 용인하는 탓일까. 반드시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 유치원 교육을 누가 맡는가 하는 근본적 시스템의 차이가 작용하는 듯하다. 미 교육부를 인용한 현지 보도에 따르면 의외로 미국의 유치원생 90%는 공립유치원을 다닌다. 정부가 바우처 등을 제공하며 사립유치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최근 15년간 등록률은 오히려 줄었다는 최근 기사도 눈에 띈다. 반면 국내 공립유치원생은 25%에 불과하다. 의료서비스, 방송 등 사회의 주요 인프라가 민영화되어 있는 미국 사회에서 ‘동심 교육’을 나라에서 관장하는 교육 문화가 참 이색적이다.

왜일까. 미국 사회에서 학교가 시작된 장면을 상상해보면 그 해답의 실마리 또한 넝쿨로 매달려 나온다. 천신만고 끝에 배를 타고 신대륙에 건너와 낯선 땅에 정착한 신교도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자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혀야 한다는 집단적 필요성이 제기됐다. ‘보스턴 라틴학교’가 그 시초인데 처음에는 교사가 자신의 집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했다. 독립선언서에 첫 서명을 한 존 행콕은 물론 “대표 없이 과세 없다”며 영국 정부의 과세 확대에 반대하고 식민주민들의 항영 전선을 결집했던 새뮤얼 애덤스도 이 학교에서 글쓰기를 배우며 세상에 대한 눈을 키워갔다. 역시 미국 건국 시조의 하나로 다방면의 활동을 벌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 학교를 다니다 아버지의 양초공장 일을 돕기 위해 중퇴했다.

이처럼 아이들 교육을 ‘내 아이 교육’이 아니라 커뮤니티 현안으로 시작하면서 형성된 그 교육에 대한 사회적 접근법이 아직껏 유지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미국 파업 교사들의 요구사항이 임금 인상뿐 아니라 학급당 학생 수 축소, 사서 증원, 양호실 예산 확대, 보건 및 상담 교사 임금 인상 등 교육 여건 개선과 관련되는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이 사회적 접근법이 감지된다. 결국, ‘동심 교육’은 국가의 몫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주영기(한림대 교수·미디어스쿨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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