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27)] 배기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

“기독교 사랑 실천으로 분단 극복, 통일”

배기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이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배기찬(56)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은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 동북아비서관과 정책조정비서관 등을 지내며 남북문제를 다뤄온 북한·통일 분야 전문가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의 ‘10·4 남북정상선언’ 합의문 작성에 참여했고 지난해엔 남북 정상회담의 전문가 자문단으로 활약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역사적 순간에 함께한 배 고문을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배 고문은 대학 새내기 시절 사회 현실과 인생의 목표를 고민하다 통일에 관심을 두게 됐다. 1982년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했는데 대학가는 민주화운동 열기가 뜨거웠다. 경북 칠곡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데모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상경한 터였다.

배 고문은 “학우들이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고민하다가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을 찾았다”면서 “밤하늘을 보는데 문득 ‘허무한 인생에서 가치 있는 건 무엇일까. 그건 사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랑을 민족 차원으로 적용하면 민족이 하나 되는 것, 즉 통일이란 결론이 나왔다. 이 깨달음을 얻고서는 인류 역사 속에서 사랑을 외친 예수와 묵자를 인생의 본보기로 삼았다. ‘사랑을 실천하고 통일을 이룬다’는 명분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신약성경 속 예수의 삶도 공부했다.

예수가 신앙 대상으로 바뀐 건 96년 하버드대 객원연구원으로 미국을 찾았을 때부터다. 타국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쳐 한인교회에 등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워함이 살인에 이른다’는 말씀으로 회개하다 성령 세례를 체험하면서 열혈 신자가 됐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로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그즈음 그가 북한 동포를 위해 한 주에 하루 금식을 하던 도중 일어난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의 망명은 북한 동포를 향한 그의 아픔을 자극했다. 미국 생활 8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와 ‘북한 동포를 위한 한 주 한 끼 금식운동’을 펼쳤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주도한 북한교회 재건운동에도 참여했다.

2000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유로 대선캠프 정책팀에 참여한 그는 참여정부에서 일한 뒤 2009년부터 3년 반을 미국 시애틀 안디옥선교훈련원에서 ‘통일선교사’로 활동했다. 이후 문재인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외교·안보 분야 자문 역할을 하는 등 정계와 기독교계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배 고문은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에 대해 “협상의 여지가 남아있다”며 절망하긴 이르다고 봤다. 그러나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가 아닌 핵무기를 보유하는 ‘핵 군축’을 고집한다면 경제 발전은 요원할 것”이라며 “비핵화의 진전 없이는 한국 미국 중국 등 어디하고도 제대로 된 관계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선 향후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고문은 “남북 분단을 해결하기 위해선 증오와 분노 같은 영적 문제부터 풀어야 하는데 여기에 한국교회의 역할이 있다”며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부터 민족 간 증오를 회개하며 사랑을 실천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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