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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에서] 文 대통령 ‘독서 인사’ 폐해 많다

대중용 베스트셀러 저자가최고 전문가 아냐… 즉흥적영입, 실패 사례 갈수록 늘어


대통령의 책읽기를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독서광인 오바마 대통령이 여름휴가나 크리스마스 연휴 때 구입한 책이나 독서 리스트는 화제가 됐다. 그는 퇴임 1주일 전 마지막 인터뷰도 저명한 뉴욕타임스 서평 담당 기자인 미치코 가쿠타니와 했다. 오바마는 이 때 “보통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무거운 책임감과 외로움을 독서로 이겨냈다. 백악관 8년을 버틴 비결은 독서였다”면서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게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자서전 ‘운명’에서 스스로 ‘활자 중독’이라고 밝힐 정도로 책읽기를 좋아한다. ‘대통령의 독서는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 읽는 책은 통치권자의 현재 관심사, 가치관 등을 간접적이지만 세밀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독서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문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들을 정부의 주요 직책에 기용하는 사례가 빈발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예는 지난 ‘3·8 개각’에서 등용된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다. 김 후보자가 2016년 발간한 ‘협상의 전략’이 대선후보 시절 문 대통령의 독서 목록에 포함돼 있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여성가족부 차관에 승진 임명한 김희경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도 저서 ‘이상한 정상가족’으로 관직에 들어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당시 은수미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었고, 저자인 김 차관에게 격려 편지를 보냈다.

지난달 23일 경제과학특별보좌관에 위촉된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도 ‘독서 인사’다. 문 대통령은 2015년 당대표 시절 당시 이 특보의 책 ‘축적의 시간’을 감명 깊게 읽었고, 후속작 ‘축적의 길’도 정독한 뒤 참모들에게 일독을 권했다고 한다. 최근 주중 대사로 내정돼 논란이 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번 정부에 몸 담게 된 것도 책이 매개가 됐다. 문 대통령이 장 전 실장이 쓴 ‘왜 분노하지 않는가’를 읽고 감명받아 ‘삼고초려’했다는 게 정설이다.

‘할 일이 없다면 아세안으로 가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으며 최근 사퇴한 김현철 전 대통령 경제보좌관 겸 신남방정책특별위원장도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김 전 보좌관이 2015년 발간한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인상깊게 읽었고 강연을 들은 뒤 영입했다.

문 대통령의 독서 인사는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능력보다 이념이나 진영논리를 들이미는 공식 인사라인의 관행을 깨는 시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식 라인을 통한 ‘사람 찾기’의 한계를 인식해 스스로 적합한 인재를 찾아나선 대통령의 노력을 평가하는 시각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부정적인 반응이 늘어나고 있다. 장 전 실장이나 김 전 보좌관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김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자질을 둘러싼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우선, 대중이 판단하기에 내용이 훌륭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책을 썼다고 해서 성공적인 정책 담당자나 참모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문 대통령이 대중용으로 쉽게 쓴 책을 읽고 그 저자를 과대평가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통령이 영입한 학자 중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는 드물다. 행정 경험이 없는데다 최고 수준도 아닌 이에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중책을 별 검증도 없이 맡기는 것이 국정에 도움될 리 없다. 어쩌면 문 대통령의 유별난 독서 인사는 해당 분야 최고의 인재를 구해야 한다는 대통령 자신의 목적의식이 빈약했던 게 최대 문제일지 모른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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