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공동체를 위한 포용의 리더십


우리나라가 모던한 사회인가, 혹은 포스트모던한 사회인가를 주제로 동료 교수와 대화한 일이 있다. 그때 얻은 답은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섞여 있고 여기에 전근대적 요소까지 더해진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건 단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서구의 여러 학자는 현대 서구사회가 별로 모던하지 않고, 동시에 포스트모던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문화가 지닌 다면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한국사회는 전근대적 리더십과 포스트모던적 리더십이 공존한다. 전근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체주의를 앞세운다. 그들은 독단적 경영과 힘의 정치를 추구한다. 나와 너의 차이를 ‘옳고 틀림’으로 이해하며 규정한다. 이 세상에 선과 악, 좌와 우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한다. 자기 생각에 맞는 사람들만 곁에 둔다. 회의를 하는 이유도 자기 확신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다.

반면 포스트모던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다양성을 존중한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한 사람의 생각보다 여러 사람의 생각이 더욱 좋은 결과에 이르게 한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가 좋다고도 여긴다. 누가 틀렸고 누가 맞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대신 누가 더 참신하고 새로운 생각을 내놓느냐를 중요하게 여긴다.

특정한 목표에 모든 사람을 끼워 맞추려는 시도를 싫어하고 오히려 각자 가진 이야기와 사연을 존중한다. 진리보다 더욱 중요한 건 삶의 자유라 여긴다.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 사회는 보편적인 것만 추구하는 사람과 특수한 데 주목하는 사람, 획일성을 강조하는 사람과 차이를 인정하는 사람, 전체를 바라보는 사람과 부분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는 셈이다.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가 ‘평등한 존엄성의 정치’와 ‘차이의 정치’라고 이름 붙인 것과도 상통한다. 상반되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공존하면서도 사회가 지탱되는 걸 보면 둘 중 하나만 전적으로 맞고 다른 것은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전근대적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은 다양성과 차이를 모두 인정하면 사회와 조직이 무질서해진다고 판단한다. 사람들이 모두 함께 지향하는 공통의 가치가 있어야만 평화와 공존이 보장된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 포스트모던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회는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옛날의 사고방식에 갇히면 기득권은 여전히 기득권이 되며, 사회는 경직되고 유동성을 상실해 새로운 자아가 창조될 공간이 없어진다고 본다. 이 두 가지 생각 모두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을 통합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나의 대안으로 나는 ‘공동체를 위한 포용의 리더십’을 제안하려 한다. 이 리더십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자신의 정체성을 유동적으로 생각하며 스스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가진 생각이 틀릴 수 있다거나 나보다 나은 의견이 있다고 판단한다. 자신을 불변하는 상수로 놓는 순간 인간은 퇴보한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형 리더십은 다른 이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포용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은 공동체를 생각해야 한다. 공동체를 중요하게 본다는 건 공존과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허용될 때 공동체에 더욱 유익할까, 혹은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길을 찾아는 지혜가 필요할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21세기형 리더십은 공공선을 지향하려 한다. 이를 무시하는 일방적 권리 주장을 지양한다. 이보다 사회와 조직 전체를 풍요롭게 만드는 리더십에 힘을 싣는다. 이런 리더십이 사회와 조직을 이끌 때 우리는 희망찬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병훈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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