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를 출입하던 1990년대의 일이다.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앞두고 미국 언론이 첨단 무기에 대한 기사를 게재한다. 가공할 파괴력과 완벽한 방어력을 지닌 무기 성능을 소개한다.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의 방위를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 정부와 방위산업체가 무기를 팔려고 합동작전을 벌인 것이다. 한국 특파원들이 미 언론의 기사를 재해석해 송고하면 한국 언론이 크게 보도한다. 미 국방장관은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국의 언론 보도를 거론하며 유리한 협상 고지를 선점하려고 노력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동맹국 분담액을 대폭 올리기 위해 ‘주둔비+50’ 방안까지 들고 나왔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군 주둔의 대가로 한국·유럽·일본 등 동맹국에 주둔비의 150%(주둔비+50%)를 내도록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가 참모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구상이다. 한국 언론은 미 언론의 기사를 비중 있게 처리했다. 이 구상이 현실화하면 올해 주한미군 주둔비의 50%가량(1조389억원)을 내는 한국의 분담금은 3조원대로 폭증하게 된다. 한·미는 내년도 한국 분담금 규모를 정하기 위한 협상을 올해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엔 90년대와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에서조차 비판적인 발언이 쏟아졌다. WP는 동맹국들에 보호비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고, 미군은 용병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반응을 실었다. 미 군사 전문매체 ‘디펜스 원’은 “미국이 동맹국들의 집단적 안보를 인질 삼아 몸값으로 리베이트를 요구하고 있다”며 “일부 비판자들은 ‘주둔비+50’ 구상을 조폭의 갈취와 착취에 비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직 장성들과 정치인들도 “백치 같은 짓” “왜 동맹국들을 때리는가” “조폭이 갈취 대상 관할 지역을 취급하는 격” “자멸적인 조치” “미군은 조폭이 아니다”고 반발했다.

미군의 해외 주둔 목적은 미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미군이 주둔하는 지역에서 전쟁 억지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면 미 국익에도 도움이 될 리 없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동맹국의 팔을 비틀 궁리만 한다. 계속 이러면 북한의 바람처럼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폭발할지 모른다.

염성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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