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남진 (22) 박자 틀리면 꿀밤 먹이던 ‘영혼의 히로인’ 박춘석

힘들었던 1980년대 보내고 재결합 2700곡 작곡한 스승님이자 ‘형님’… 1994년 작곡하다 뇌졸중으로 별세

남진 장로(오른쪽)가 데뷔 초인 1960년대 말 천재 작곡가 박춘석 앞에서 녹음하고 있다. 남 장로보다 열다섯 살 위인 박춘석은 남 장로를 친동생처럼 아꼈다.

1980년대에는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93년이 돼서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박춘석과 재결합해 ‘내 영혼의 히로인’을 발표한 것이다. ‘가슴 아프게’ ‘마음이 고와야지’ 등 명곡으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그분과의 재결합은 대중으로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헝클어진 운명의 끈을 바로잡지 못하고 사랑했던 그 사람을 잃어버린 채 돌이킬 수 없는 남이 되어 원점에 난 서 있네.”

‘내 영혼의 히로인’ 가사다. 오래된 이별의 상처를 다시 떠올린다는 내용을 담았다. 작곡 박춘석, 작사 조동산인 이 작품이 인기를 얻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제목처럼 여주인공이 되고픈 많은 여성이 이 노래를 사랑해줬다.




하지만 이 곡에는 아픈 기억이 함께한다. 박춘석과의 마지막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박춘석은 87년 14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이 되며 작곡 외의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듯했다. 94년 8월 밤새 작곡에 몰두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2010년 별세했다. 그분의 별명은 일본말로 ‘오야붕(대장)’이었다.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해준 분이자, 항상 대장처럼 따랐던 그분이 지금도 몹시 그립다.

박춘석은 진정한 예술가였다. 예술가가 지녀야 할 멋진 면을 다 갖고 있었다. 자존심도 굉장했지만 아이처럼 순수한 면도 있었다. 양면을 지닌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에게 경우 없이 행동했다가는 누구도 용서를받지 못했다. 매사 경우를 따지는 건 칼 같았다. 상대가 제아무리 유명인이라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한번은 유명한 가수 한 명이 박춘석의 눈 밖에 나서 크게 혼이 났다. 당시 연예계에서 힘깨나 쓰며 기획과 흥행에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박춘석에게는 싫은 소리를 전혀 못했다.

나도 너무 바빠 연습에 빠진 적이 있다. 그때 아주 심하게 욕을 듣고 혼이 난 기억이 있다. 연습하다 박자가 틀리면 늘 꿀밤을 먹였다. 피아노를 치는 분이어서 그런지 손힘도 세서 꿀밤 한 방에 혹이 날 정도였다. 예의 없이 굴면 거칠게 욕을 하며 혼을 냈다. 누구에게나 무턱대고 그랬던 건 아니고 예의가 아주 없는 사람에게만 특별히 그랬다.

겉으로는 점잖아서 전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분이 그러니 더 무서웠다. 그와 같은 성격은 연예계에서도 참 드물어 손에 꼽힐 정도다. 예술가로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을 꼽자면 지금도 주저 없이 박춘석을 꼽는다. 스승님이면서도 멋진 예술인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처음에는 어려워서 말도 못 붙였는데 가까워지자 친형처럼 포근하게 감싸줬다. 밥도 사주고 순수하게 인간적으로 만나줬다.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 취급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보다 열다섯 살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약자에게는 약하고 강자에게는 강한 정의로운 이였던 것 같다.

그와 같이 작업하지 않았다면 그저 점잖기만 한 사람으로 그를 바라볼 것이다. 그분의 진면모를 아는 이는 대한민국에서 스무명 남짓이다. 대인관계를 넓게 맺는 이도 아니었기에 그렇다. 그는 오직 음악에만 몰두했다. 한 사람이 2700곡을 작곡한다는 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박춘석은 존경받는 예술가였다. 예술가의 혼이 있고 매력이 있는 분이었다.

정리=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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