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삶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사람이 각양각색의 이유로 죽어가는 걸 경찰서 투입 이틀 만에 깨달았다. 서울 광진구 아파트에서 사고가 났다. 현장은 아직 경찰 도착 전이었다. 경비원이 물을 뿌려 주변을 치우고 있었다. 참혹한 현장에 정신이 아득했다. 할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자식이 여럿인데 찾아오는 이는 없었다고 이웃 주민이 말했다. 당시를 떠올리자 한 경찰관은 심드렁해했다. “하루 서울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수십명이다. 한강물을 다 빼면 시체가 수백구는 될 것”이라고 했다. 고시원 화재로, 헬기 추락으로, 돌봐주는 이 없이 고독하게 집에서…. 체감하지 못할 뿐 죽음은 공기처럼 곳곳에 존재했다. 날것의 세상이 두렵고, 떨렸다.

긴장은 곧 사라졌다. 기자생활 가운데 숱한 죽음을 목격했다. 마감에 쫓기다보니 소위 ‘얘기’가 되는 죽음과 아닌 것으로 사안을 나누게 됐다. 같은 변사라도 강북보다는 강남이 좀 더 기사가 되고, 장례식장에 유명인이 찾아오는지, 공인이 보낸 화환이 있는지 보게 됐다. 연예인의 죽음에 ‘단독’을 단 기사나 ‘숨 쉰 채 발견’이라는 장난섞인 지라시를 봐도 무심코 넘겼다. 이야기를 소비하는 시대에서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지난 1월 3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유서를 남기고 잠적한 날이다. 오전 10시30분쯤 자살의심 신고가 들어왔다는 경찰 보고가 돌았다. 10분 후 ‘받은글’로 그가 학생일 때 보수우파 활동을 했다는 얘기가 전달됐다. 47분 한 매체에 그가 유서를 남겼다는 단독 기사가 떴다. 서울지방경찰청이 “동명이인”이라고 확인했다는 내용이 51분에 카톡을 타고 전파됐다. 12시28분 신 전 사무관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얘기가 들렸고, 48분쯤 관악경찰서발로 “생명에 지장없다”는 소식이 돌았다. 2시간 동안 메신저 창 수십개에 불이 났다. 한 공무원은 “그래도 사람 목숨이 달린 건데 언론과 지라시가 너무 빠르다”고 했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정규 뉴스 도중 총격으로 한 여성 하원의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타 매체가 사망 소식을 전하지만 해당 뉴스 제작진은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총격 사건 자체만 보도한다. 언론사 사장은 질책한다. 그때 다른 스태프가 외친다. “의원이 아직 살아있대요! 마취의사가 수술 준비 중이라고 확인해줬어요.” 한 스태프는 자막 담당에게 말한다. “이제 숨 크게 쉬어도 돼.” 제작진은 광고와 돈, 인간의 존엄성 가운데 후자를 택한 것이다. 그만큼 목숨은 중하고 귀하다.

드라마와 현실은 분명 다르다. 모두가 따라가는데 소신을 지키는 건 쉽지 않다. 혼자만 낙종한 게 된다. 현 미디어 환경에선 다 틀렸어도 여럿이 함께하면 사실 비슷한 게 된다. 비리 의혹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공무원의 장례식장에서 가족에게 정황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듣고 한참 동안 문 앞을 서성댔던 기억이 난다. 울고 있는 유족에게 당당히 말을 거는 게 꼭 좋은 기자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못하겠다”고 손 놓는 게 맞는 것 같지도 않다. 다만 경마처럼 신재민 사무관의 안위를 실시간 공유하고 평가했던 우리 언론들의 성급함은 지적받아 마땅하다.

지난해 말 강릉 펜션 참사 당시 일부 기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자의 친구에게 심경이 어떤지 캐물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인권을 지키는 게 언론의 의무인데 특종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산화탄소 누출로 대학 입학을 앞둔 청춘 여럿이 숨진 것을 두고 ‘탄소요정’이라고 비하하는 공감 부재의 사회에서 비단 언론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언론이 나서서 목숨값을 재단하고,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는 아픈 사회를 바꾸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행히 변화도 감지된다. 지난해 말 강릉 펜션 참사 기자들은 피해자 직접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일부 방송사는 빈소에서 취재진을 철수시켰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는 ‘언론은 생명권 보장과 생명존중 문화 확산에 기여해야 한다’고 돼 있다. 무수한 매체의 범람 가운데서도 기사 말미에 중앙자살예방센터 전화번호를 명시하는 언론사가 늘고 있다. 비록 자기위안일지라도, 생명의 가치를 무겁게 여기는 기자와 언론이 좀더 많아지길 바란다.


박세환 정치부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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