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여 어서 오소서, 이 땅에”… 고문에 굴하지 않고 독립 외치다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2부> 독립운동과 한국교회 (6) 김마리아 선생과 정신여학교

김마리아 선생

올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100년 전 3·1운동 민족대표 33인과 배후까지 망라된 48인 등 수많은 남성 독립투사들이 활동했지만, 일본 도쿄와 한반도는 물론 중국 상하이까지 모두 족적을 남긴 이는 오직 한 사람이다. 남성이 아니고 여성이다.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의 주인공, 김마리아(1892~1944) 선생이다.

김 선생은 1910년 정신여학교를 4회로 졸업하고 15년 일본 도쿄여자학원으로 유학했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황해도 장연의 대감댁 자손이었지만 일찍 부모가 돌아가셨고, 그의 어머니는 유언으로 “셋째 마리아는 꼭 유학을 보내 달라”고 친지들에게 당부했다. 김 선생은 19년 2월 8일 제국의 심장부이던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YMCA) 강당에서 열린 독립선언대회 현장에 있었다.

이후 선언서 원본을 옷에 숨겨 아흐레 뒤인 17일 귀국한다. 3·1운동이 발발하자 그는 “남학생들이 크게 운동하고 있는데, 우리 여자들이 그대로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다”면서 항일 부녀단체 조직을 논의하다 일경에 발각됐다. 김 선생은 그해 3월 6일 정신여학교 교무실에서 체포돼 남산 자락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로 끌려갔다. 애국지사들에 대한 혹독한 고문으로 유명해 ‘왜성대(倭城臺)’로 불렸으며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쳐지는 곳이었다. 김 선생은 그곳에서 코와 귀에 고름이 생기는 병을 얻는 등 모진 고문을 당했다.

서울 송파구 정신여중고 안에 있는 김마리아회관 1층을 13일 찾았다.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이송죽 부회장이 보자기에 싼 흰색 한복 저고리를 취재진에 공개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김 선생은 배학복 여사를 양녀로 삼았다. 배 여사는 2014년 임종 직전 기념사업회에 김 선생이 입던 이 한복을 기증했는데 저고리 상하 길이가 오른쪽은 짧고 왼쪽은 길었다. 이 부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김마리아 선생의 유품인 한복 저고리. 일경의 고문으로 오른쪽 가슴이 주저앉았기에 저고리 한 쪽이 짧다. 강민석 선임기자

“김 선생은 일경의 고문으로 오른쪽 가슴만 내려앉았습니다. 인두로 지지는 악형을 당해 마치 유방암 환우들 수술 자국처럼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오른쪽 저고리 섶이 불룩한 왼쪽보다 짧습니다. 이 저고리는 양녀가 눈물로 지어드린 겁니다.”

김 선생은 가석방 이후 19년 10월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에 선출됐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방순희 김순애 차경신 김영순 신의경 이혜경 장선희 이성완 이정숙 등 정신여학교 출신 다수가 참여한 단체로 그해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보냈다.

이 일로 김 선생은 다시 일경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거쳐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병보석으로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그는 비밀리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22년 임시정부 의정원 황해도 대의원으로 활동한다.

김 선생은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신학을 공부했고 32년 고국으로 돌아와 원산 마르다윌슨여자신학원 교수가 됐다. 34년부터는 장로교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에 올라 7~10대 회장직을 역임했다. 1944년 3월 13일 광복되기 한 해 전에 “예수여, 어서 오소서. 이 땅에”라는 말을 남기고 52세로 눈을 감았다. 유언에 따라 화장한 뒤 유골을 평양 대동강변에 뿌렸다.

여기자 최은희는 김 선생에 대해 “포부와 경륜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했으며, 하늘과 땅처럼 차원이 다른 분”이라 기록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김마리아와 같은 동지 10명만 있었다면 한국은 독립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마리아 선생 서거 75주기를 맞이한 13일 서울 송파구 정신여중고 교정에선 추모식과 학술대회가 열렸다. 오른쪽부터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이미자 회장, 이송죽 부회장, 최성이 정신여고 교장. 강민석 선임기자

정신여중고는 이날 김마리아 선생 75주기 추모식과 학술대회를 열었다. 꽃피는 3월임에도 서설(瑞雪)이 내리는 등 쌀쌀한 날씨였다. 정신여고 노래선교단이 ‘주님 은혜 아니면, 나서지 못하네’란 가사의 찬양을 했다. 이성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이 ‘신앙과 애국’을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김마리아: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란 책을 쓴 박용옥 전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가 김 선생의 독립정신에 대해 기조 강연을 했다. 최성이 정신여고 교장은 “기독교 교육을 받고 여성의 몸으로 독립운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한 선생의 뜻을 기려 정신여중고 모든 교실에 그분의 사진이 걸려 있다”면서 “올해는 특별히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선생을 기억하는 다양한 콘텐츠 대회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가로서 유관순 열사에 업적이 뒤지지 않는 김 선생의 서훈을 높이는 작업도 추진된다.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이미자 회장은 “김 선생은 현재 건국훈장 독립장으로 세 번째 등급인데 유 열사처럼 대한민국장으로 서훈을 높이기 위한 공적 발굴과 서명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사업회는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남아있는 옛 정신여학교 건물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교계와 더불어 종로5가 일대에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담은 공간을 마련하는 일도 모색하고 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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