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남진 (24) “몇 년 전부터 준비한 곡입니다”… 빈자리 채워준 ‘둥지’

3년 준비한 새 음반 마무리 작업 중 무명 작곡가가 놓고 간 테이프 듣자마자 감탄… 히트곡 갈증 날려

남진 장로가 2016년 작곡가 차태일과 함께 녹음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너 빈자리 채워 주고 싶어, 내 인생을 전부 주고 싶어, 여기 둥지를 틀어.”



2000년 발표한 곡 ‘둥지’의 가사 일부다. 그 곡이 요즘 나를 대표하는 곡이 된 듯하다. 최근 한 아나운서도 나를 소개하며 ‘둥지’를 언급했다. 나이가 쉰을 넘기니 젊은 세대와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둥지’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좋아해 줬다. 젊은 세대도 내게 친밀감을 느꼈고 ‘임과 함께’ 등 나의 오래된 곡들도 부르게 됐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가수의 가장 큰 수입원은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빈잔’ 이후 특별한 히트곡이 없었던 나는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공연에 나섰다. 마음 한쪽에는 후속곡에 대한 갈망이 항상 있었다.

공연을 하면서도 틈틈이 새 음반에 넣을 12곡을 준비했다. 3년이 걸렸다. 녹음까지 마치고 마무리 작업 중일 때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내 작업실에 누군가가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놓고 갔다. 지방 공연이 많았기에 사무실을 비울 때가 많았다. 내가 없으니 카세트테이프만 놓고 간 것이다.

녹음을 다 끝낸 뒤였는데도 우리 직원이 카세트테이프를 틀었다. 곡이 마음에 들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언뜻 들었는데 느낌이 좋았다. 직원에게 제대로 틀어보라고 했다. 이번에는 ‘딱’ 손뼉이 쳐졌다. 그 리듬에 감탄이 나왔다. 누가 곡을 만들었나 명함을 보니 차태일이라고 돼 있었다. 그때만 해도 모르는 이름이었다. 전화해서 “어떻게 곡을 썼느냐”고 물으니 “선생님 드리려고 몇 년 전부터 준비한 곡”이라고 답했다.

새 음반을 발매하기 직전이었지만 모든 작업을 중지시켰다. 편곡자를 불러 바로 녹음실을 예약하자고 했다. 예약이 꽉 차 있었지만 마침 배일호가 노래하고 있었다. 한 곡만 녹음하면 된다며 사정해 녹음을 마쳤다. 그 곡이 차태일 작곡의 ‘둥지’다. 카세트테이프가 조금만 늦게 왔어도 그 곡을 담지 못했을 거다.

그 후 차태일은 최고의 동반자가 됐다. 원래 그는 전자피아노 연주자였다. 무명이었으나 음악성을 숨길 수 없었나 보다. 나보다는 어리지만 연배가 있어 같은 세대라 할 수 있었다. 전자피아노로 팝송을 많이 연주해 멜로디 진행 감성 등 음악 취향이 나와 비슷했다.

내 삶은 초대 대한가수협회장을 맡기 전과 후로 나뉜다. 평생 젊을 줄만 알았는데 50대를 넘긴 시점부터 나이가 들어감을 서서히 느꼈다. 지금도 콘서트를 하면 5시간 동안 70여곡을 부르는데 춤도 곁들이니 웬만한 체력으로는 힘들다. 젊은 사람도 힘든 일을 하다 보면 나이 들어감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지난해 최희준과 신성일이 별세하며 많은 걸 느꼈다. 그다음 세대가 나라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가수로서 산 내 삶은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 것인가. 오늘날 나를 있게 해준 팬들에게 좋은 모습과 노래로 보답하고 떠나는 게 나의 숙제다. 가수로 데뷔한 뒤 지금이 가장 어렵고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여기서 잘못하면 지금까지 쌓은 모든 게 망가질 수 있다는 걸 절감한다.

멋진 가수가 되고 싶다. 노래만 잘한다고 좋은 가수가 아니다. 동료와 선후배, 팬들에게 좋은 사람이었다는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인기를 누린다 해도 사람의 삶은 거기서 거기다. 유명인으로서 좋은 점이 하나라면 어려운 건 아홉이다. 나의 자식들도 내 삶에 대한 평가를 평생 듣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정리=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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