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3만 달러 대한민국 행복 지수는 OECD 하위권
삶의 질 개선 앞세운 文정부 정책·정치의 방향 잘못 택했다

돈을 풀어 지원하면 행복이 따라올 것이란 순진한 정책과
협치·통합 대신 정쟁·분열을 부르는 정치가 행복을 막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정치의 존재이유로 선언했다. 그에게 행복은 의문의 여지없는 최고선이었다. “행복은 삶의 의미이며 목적일 뿐 아니라 인간 존재의 총체적 목표이자 종착지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란 행복 국가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의 2018년 1인당 GDP는 약 3만2000달러다. 190개국 가운데 순위는 29위이지만 인구 5000만명이 넘는 나라 중에는 6위에 해당된다. 스페인을 제쳤고, 이탈리아가 코앞에 있다. 지나온 역사를 생각하면 참으로 뿌듯한 일이다. 이에 비해 2018 세계행복지수에서 한국은 210개국 가운데 57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좋은 삶의 질 지수’에서는 38개국 중 27위였다. 특히 삶의 만족도, 공동체 지수, 미세먼지 등이 꼴찌 수준이다. 최근 발표된 머서(Mercer) 삶의 질 지수에서 231개 주요 도시 가운데 서울이 77위이고 부산이 94위를 기록했다. 서울은 아시아의 싱가포르나 홍콩, 일본의 5대 도시 등에 뒤졌고, 부산은 대만 타이베이보다 뒤에 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를 묻는 주관적 행복도 조사에서는 10점 만점에 7점이 넘어야 행복도가 높다고 평가한다. 최근 여러 조사에 의하면 대체로 한국인의 행복도는 6점 내외다. 1인당 국민소득만으로 보면 어깨가 올라가다가도 행복과 삶의 질만 얘기하면 왠지 어깨가 내려간다. 이 격차가 줄지 않는 한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뉴스도 시큰둥한 반응을 피할 길이 없다.

이런 면에서 취임 후 대통령이 삶의 질 개선을 국정 모토로 내세운 것은 바람직했다. 그 뒤로 2년 가까이 흘렀다. 이제 국민들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삶의 질은 나아지고 더 행복해지셨습니까?’ 청와대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나 다수 국민은 고개를 젓는다. 이유는 이미 드러나 있다.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경제, 노인 단기 일자리로 분식해도 감춰지지 않는 일자리 급감, 불쾌지수를 한껏 끌어올리는 미세먼지, 가중되는 세금과 부담금 등등. 그런데 지금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게 국민들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한다.

문재인정부의 ‘행복 정치’는 정책과 정치 양면에서 길을 잘못 들어섰다. 정책 면에서 돈을 풀어 사람들을 지원하면 행복은 따라올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이 옆길로 새게 만들었다. 정부가 도움을 주면 고마울 수는 있어도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만든 단기 알바에 행복해할 청년이 있을까? 박원순 서울시장 말대로 조폐청을 만들어 돈을 찍어 뿌리면 행복해질까? 베네수엘라의 어두운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이다. 사람은 자기 노력으로 성과를 얻어야 자아에 ‘의미’로 전달되고 행복 뇌파로 이어진다. 정부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여건을 만드는 데 더 집중했어야 했다. 복지를 조금 늘려도 일할 여건을 만들지 못해 일자리가 없어지면 소용이 없다. 차가 없어졌는데 기름값 대주면 뭐하나. 일자리 예산 54조원 투입, 최저임금 급상승, 노동시간 단축을 ‘사람 우선’이라고 밀어붙였지만 선의가 사악한 결과를 만난 것은 결국 시장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외눈박이 국정의 문제다. 이는 현실의 복잡계를 이념의 단순계로 푸는 오류에서 비롯된다. 이런 오류는 국정 전반에서 발견된다. 부동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오로지 강남 집값 잡는 데만 골몰해 시장 전체가 왜곡되는 위험을 간과하고 있다. 강남 집값 잡으려다 우리 집값만 왕창 떨어진다고 하면 전체 가구주의 60%에 근접하는 자가 보유자 중 누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가계부채 위험과 금융 충격 등 부동산 시장 침체가 가져올 경제적 후폭풍은 계산에서 빼고도 말이다.

정치도 ‘행복 정치’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협치와 통합의 정치가 행복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이미 행복도 상위 국가들의 경험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정쟁과 분열의 정치는 ‘피로 사회’와 ‘분노 사회’로 가는 길로 연결된다. 그 길에선 행복의 조건인 신뢰나 포용이란 팻말은 찾기 힘들다. 현 집권세력은 정치적 상대를 낙인찍는 기술에서는 역대 최강이다. 모든 문제를 전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을 넘어 난데없는 친일청산론이 나온다. 오죽하면 진보의 대표적 지성인 최장집 교수가 “현 정부가 이념적 지형을 자극해서 더 심한 이념 대립을 불러오고 있다”고 비판을 할까. 총선을 겨냥한 전략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건 행복 정치로 가는 길이 아니다. 외신을 인용해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야당 원내대표를 제소하고, 게임 규칙인 선거법 개정을 직권상정 수단인 패스트트랙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 쏟는 노력의 반이라도 야당과 대화하고 소통하려 힘썼다면 이렇게까지 정치가 팍팍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이전 보수 정부에서는 그렇게 했느냐고 핀잔을 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좀 달라지라고 국민들은 권력을 준 것 아니겠는가.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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