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명문대학 교수가 쓰지도 않은 논문을 해외 학술지에 게재했다고 허위 보고해 거액의 논문 지원금까지 챙겼다는 사실이 보도돼 큰 충격을 줬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같은 학과의 또 다른 교수가 거의 동일한 논문을 복수의 해외 학술지에 이중 게재한 것이 밝혀져 대학을 마비시켰다. 그런데 이 사실이 폭로된 결정적 계기는 학장직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라고 한다.

주요 보직을 둘러싼 교수들 간 갈등이 수시로 발생하는 것은 본업 대신 학장이나 실·처장, 부총장, 총장 등 수직적 출세에 집착하는 소수 교수들 때문이다. 마지못해 학과장과 같은 보직을 한두 번 맡다 본업인 연구와 교육으로 돌아가는 대다수 교수들과 달리 이들은 젊은 시절부터 보직에만 목매는 소위 ‘보직중독’ 교수들이다. 학장이나 실·처장급 이상의 보직을 두세 번 이상 반복하면 보직중독자일 가능성이 높다. 전체 교수의 10%쯤 되는 보직중독 교수들의 목표는 교내에서는 총장이고 궁극적으로는 정치권 진입이다.

이들의 갈등은 대학을 갈갈이 찢어놓기 일쑤다. 한쪽이 권력을 잡으면 다른 편은 심각한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한 명문대학에서 총장의 정책에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 말고는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그 대학 교수들 중 최고의 연구 업적을 가진 세계적 학자를 본부 인사위원회에서 대학이 기대하는 학문적 수월성에 못 미친다는 모호한 이유로 승진에서 탈락시켜 학계에 충격을 준 일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연구 업적이 훨씬 낮은 같은 학과 출신 보직교수는 쉽게 승진되기도 했다. 보직중독자들의 행태는 직선제나 임명제 등 선출 방식과도 상관없고 심지어 이해관계에 따라 선출제도를 바꾸기도 한다. 대학 민주화를 외치며 직선제를 주장하다가도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어느 틈에 임명제를 추진하기도 한다. 이합집산도 활발하다. 이번에 학장이 되도록 밀어주면 다음에 캠프에 들어가 총장이 되도록 도와준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보직중독자들은 과연 총장 등의 보직이 요구하는 행정 역량을 갖췄을까. 권모술수 역량은 탁월하나 행정 역량은 대부분 낙제점이다. 후에 정부 고위직에 오른 한 대학 총장은 서로 다른 전공 분야가 모인 대학의 행정을 선진 대학처럼 분권화하지 않고 왜 본부가 집권적으로 통제하느냐고 묻자 대학이 워낙 크고 다양해서 분권화할 수 없다고 답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최근 명문대 총장 후보자들의 대학 발전안을 보면 대부분 구태의연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신분상승에 혈안이 돼 대학정신과 시대정신에 대해선 문외한인 이들이 제시하는 정책은 유행을 따르거나 정치권에 줄 서는 경박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건물짓기 등에 몰두해 안 그래도 부족한 재정을 파탄내기 일쑤다.

대학 보직은 21세기 지식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막중한 자리이므로 자신과 교수의 본분에 대한 겸손한 성찰이 필요하다. 교수와 같은 전문직은 조직계층상의 출세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의 질적 수준이 유일한 성취동기다. 교수가 되는 순간 수직적 신분상승은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대학 거버넌스를 바로잡으려면 본부와 보직교수들의 규모, 특권을 대폭 줄이고 보직 횟수도 두세 번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또 주요 보직자들의 선출에서 연구 업적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해외 명문대학들의 학장이나 총장은 탁월한 연구 업적을 쌓은 거장들이다. 반면 우리 보직중독자들은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논문 숫자 채우기 등으로 탁월한 젊은 교수들의 발목만 잡는 것이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이나 권력이 목적인 정치판과 달리 대학은 개방과 공유의 공동체 원리로 운영돼야 지식의 창조와 확산이 가능하다. 그런데 보직중독 교수들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 행정은 소수 보직자들이 아니라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지성 그 자체에 대한 존경과 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희망으로 연구, 교육에 헌신하는 대다수 일반 교수들이 주역이어야 한다.

신동엽(연세대 교수·경영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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