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부터 그해 초겨울까지, 대략 6개월간 필자가 경험한 강남 중심의 클럽문화 실태는 충격 그 자체였다. 강남은 마냥 화려하고 찬란한 곳이었다. 이 시대에 선택된 0.1%들이 성공의 짜릿함을 누리는 장소로 주저함 없이 강남이 꼽혔다. 하지만 그 황홀의 바닥에 짓눌려 신음하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희생양을 지켜보는 건 지옥도의 목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강남 일대 클럽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화려함의 이면을 살펴보고자 시작한 잠입취재의 동기는 무모할 정도로 뚜렷했다. 가출 청소년 쉼터에서 글쓰기 지도를 하던 필자는 함께 라면도 끓여먹고 게임도 같이 하던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실종을 경험했고, 그 실종의 종착지가 2016년, 한창 지하산업 부흥기를 맞던 클럽이었다. 그렇게 취재를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안 돼 필자의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는 상식이란 게 우습게 짓뭉개지는 수준이었다. 강남의 어둠은 가출한 청소년들을 접대부 삼아 강제로 GHB(일명 물뽕)를 경험케 하고, 약에 취한 이들을 변태 성행위가 벌어지는 밀회 장소로 밀어넣었다. 이러한 일들은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밤마다 계속되었다. 강남 클럽이란 화려한 외피를 뒤집어쓰고 그 이면에서 가진 자들이 벌이는 가학적 쾌락을 강요받거나 마약 파티의 희생양이 되어 버리는 가출 청소년들의 현실을 목도한 순간, 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싶었다. 그들의 엄연한 범법행위를 은근히, 혹은 드러내어 비호하는 법조인과 일부 경찰의 황당한 태도는 또 어떤가. 그곳에서 지낸 반년은 소시민의 무력함만 확인시켜준 비극의 시간이었다. 힘없는 먹이사슬의 희생양이 된 가출 청소년들을 제대로 돌보거나 적절한 조치 한 번 취하지 못한 채 물러난 필자는 한동안 심한 무력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결국 누구도 믿지 못할 거란 두려움을 안고 이 문제를 소설로 펼치게 되었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강남 클럽, 그 이면에 도사린 검은 공포는 그때보다 더 악진화한 듯 보인다. 경찰과의 유착 정황은 정황을 넘어 일상이 되어 버린 것 같고, 일부 남자 연예인들의 탈선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을 맞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신의 뿌리는 남아 있다. 음성적 통로와 이를 자연스럽게 시장에 연결시키는 유착의 연결고리는 여론의 관심사가 잦아들 시기만 노리는 듯하다. 잠잠해질 때에 맞춰 또 다른 은폐의 가면을 쓰고 클럽이든 뭐든 또 다른 플랫폼을 볼모로 잡고 부활할 기회를 엿볼 것이다. 냄비처럼 끓다가 갑자기 가라앉는 게 여론의 속성이란 맹신을 품고 때가 되면 그동안 잃어버린 자신들의 지분을 복구하는 데 혈안이 될 거라 보는 건 필자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다.

속칭 ‘버닝썬 게이트’로 대표되는 강남 클럽을 둘러싼 경찰과의 유착 정황, 미성년 성매매, 마약 유통, 탈세로 연결되는 각종 의혹들은 피상적인 접근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본다. 이는 클럽이란 유흥시설 자체를 탈선이 벌어지는 문제의 온상으로만 여기고 이를 주적 삼아 단죄하기만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이 문제를 일부 남자 연예인들의 개인적 일탈로만 취급해서도 안 된다.

성공할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모두를 짓밟고 일어서려는 천민자본주의 습성, 그 피투성이 찬란함을 추구하는 비루한 개츠비들이 지금도 강남의 유령이 되어 떠돌고 있다. 이들이 소유한 비열한 성공이 지하경제의 하부구조에서 착취를 강요당하는 수많은 성매매 피해 여성들과 청소년들의 비명과 맞닿아 있음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이들의 비명에 귀 기울이는 사회적 관심과 그에 상응한 사법적, 행정적 조치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돈과 향락에 미친 황금충들의 성노예로 전락하고도 불법행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도 숨죽여 떨며 강남의 밤거리를 헤매고 있을 가출 청소년들이 작금의 문제를 이해하는 본질이 돼야 할 것이다.

버닝썬 게이트를 바라보는 문제의 본질은 무심할 만큼 단순하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인간성 복구의 시간이 이제 초읽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 그 하나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주원규(소설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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