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기술을 말할 때 ‘배트나(BATNA·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란 개념이 있다. ‘협상이 결렬됐을 때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을 뜻한다.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수많은 대안 중에서 가장 좋은 대안을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협상 당사자가 온갖 변수와 경우의 수를 고려해 짜내고 개발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상대의 배트나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분석·대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협상이 진행 중이더라도 조건과 환경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배트나를 제시했다 하더라도 어떤 조건의 변화가 생겨 또 다른 배트나를 제시해야 할 경우도 있다.

더 복잡한 것도 있다. 나의 배트나가 좋다는 건 상대방이 양보해야 할 것이 많다는 뜻도 된다. 배트나란 개념 자체가 일방적일 수도, 늘 가변적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뛰어난 협상가는 상대의 신뢰를 해치지 않으면서 더 나은 배트나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늘 한다. 배트나를 여러 가지 갖고 있으면 협상력이 높아진다. 그건 그만큼 상대를 압박할 수단이 많다는 거다. 배트나를 공개하거나, 아니면 10% 정도만 알려주거나 하는 건 협상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게다. 나의 배트나가 그리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는 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 지점에서 협상을 끝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북·미 정상의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청와대가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거래)’이란 개념을 들고 나왔다.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는 서로의 비핵화 정의가 불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했고, 단계적 비핵화와 빅딜이란 북·미의 시각차를 노출했다. 앞으로 더 구체화되겠지만 굿 이너프 딜은 북한의 살라미 전술과 미국의 빅딜 전략의 중간 어디쯤의 배트나로 보인다. 하노이 합의는 없었지만 북·미가 이전의 적대관계로 돌아가기엔 둘다 부담스럽다.

결렬 이후 남·북·미가 각자 최고의 또는 몇개의 배트나를 갖고 본격적인 북핵 게임을 벌이려 한다. 하버드 등 일류 대학에는 거의 예외 없이 협상을 학문적으로 기술적으로 연구하는 학과나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미국은 협상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북한은 30년 가까이 벼랑 끝 협상 전략으로 핵을 여기까지 끌고 온 나라다. 우리는 협상을 야합쯤으로 보는 정서도 있다. 감성이 앞서기도 한다. 우리의 배트나를 잘 준비해야 할 텐데….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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