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남진 (25) 초등생 때 교회서 특송… 가수로 이끌어 주신 듯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교회 출석… 그 후 40여년 하나님 모른 채 지내

남진 장로가 2017년 3월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성천교회에서 간증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요즘은 전국교회를 돌며 간증 집회를 인도한다. ‘둥지’를 부르며 “여러분, 우리 모두 교회에 둥지를 틀까요”라고 외치면 성도들이 ‘아멘’으로 화답한다. 내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시작한 것은 2015년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서였다. 믿음이 늦었던 만큼 성령이 날 단단히 붙잡아 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나처럼 늦게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가 한 명이라도 더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소명을 다하고자 한다.



내가 처음 교회를 접한 건 목포북교초등학교 5학년일 때다. 학교 바로 옆에 양동교회가 있었다. 광복 직후 초대 전라남도지사를 지냈던 이남규 목사가 시무한 교회다. 이 목사는 영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목포를 이끌어가던 큰 어르신이었다. 선친과는 의형제 사이였다. 이 목사의 막내딸은 나의 초등학교 1년 후배였다.

양가가 깊이 왕래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촌 형은 양동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골목대장 노릇을 했던 형이었지만 신앙만큼은 진지했다. 하루는 그 형이 ‘교회에 와서 특별 찬송을 불러 달라’고 부탁해 처음으로 교회에 가보았다. 있는 힘껏 노래를 불렀다. 어렸지만 노래를 제법 불렀나 보다. 하나님께서 내 특송을 듣고 귀여워서 가수를 시켰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그 후 하나님을 모른 채 40년을 살았다.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조직폭력배의 흉기에 찔리는 등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그런데도 나의 생각과 의지, 눈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들었다. 젊고 건강했고 용기가 있었다. 기도 한 번 하지 않았다.

1991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을 맡으며 나 자신만이 아닌 다른 이도 둘러보게 됐다. 존경받아 마땅한 선배들이 생각보다 처참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접했다. 세상 모든 인기와 명예가 덧없이 느껴졌다. ‘나는 누구인가’ ‘남은 내 삶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하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제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모든 일을 오롯이 스스로 할 수는 없다는 걸 절감했다.

그때 가수분과위원회와 친하게 왕래하던 목사님이 한 분 있었다. 수천만원을 들여 선배들에게 동남아여행을 보내주는가 하면 별세한 선배의 장례식도 직접 치러줬다. 겨울이면 생활이 어려운 선배들에게 꼭 한 벌씩 따뜻한 점퍼를 선물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재벌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이분은 왜 그럴까 생각했다. 교회를 다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호기심에서였을까. 그 목사를 만난다며 몇 차례 교회를 찾아갔다. 무엇이 그가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도록만드는지 궁금했다. 40년 전 양동교회에서 특송을 했던 것까지 떠올리며 신앙이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집 근처 교회에 잠시 다니기도 했고 집에 있을 때 설교 방송을 틀어놓기도 했다. 방송으로 설교를 들으며 그 말씀의 의미를 삶 속에서 되새기려 했다.

그러던 차에 친척인 장욱조 한소망교회 선교목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새에덴교회에서 특송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가수 노사연 조영남과 함께 교회를 찾았다. 직후 고향 후배인 바리톤 여현구로부터 “형님, 주일마다 새에덴교회에 나오시오”라며 한 번 더 연락이 왔다. 친한 동생의 부탁이어서 한번 나가겠다고 답했는데 지금까지 새에덴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참 절묘하다. 집에서 설교 방송을 챙겨볼 때부터 믿음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때맞춰 지인들을 통해 교회로 이끌어주셨다.

정리=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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