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호남신학대학 캠퍼스 산자락에 허철선(찰스 베츠 헌틀리·1936~2017) 선교사의 사택이 지금도 남아 있다. 지역 선교단체가 그의 의료선교와 인권운동을 기리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허철선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기독병원 원목과 호남신대 상담학 교수였다.

1980년 5월 27일 밤. 광주의 선교사지구가 공수부대에 고립됐다. 허철선, 언더우드 등 선교사 성인 가족은 언더우드 집에 모여 기도 모임을 했다. 그 시각 무장한 사복이 허철선 부부의 집을 수색했다. 광주에서 태어난 부부의 딸 제니퍼(당시 11세)가 집에 있었다. 계엄군은 허철선이 데모 학생들을 숨겼다고 의심했다. 제니퍼는 “부모님은 안 계세요. 제발 고양이를 쏘지 말아 주세요”라고 울상이 돼 말했다. 다행히 그들은 돌아갔다. 학생 20여명이 그 집 2층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집 지하실은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독일 기자 힌츠페터가 계엄군 헬기 사격 사상자들의 X레이 사진을 찍어 세계에 알린 곳이기도 하다. 독일 유학을 했던 허철선은 그의 통역이기도 했다. 헬기 사격을 증언한 피터슨 선교사도 AP통신 기자의 통역이었다. 언더우드 부부도 헬기 사격 증언을 기록으로 남겼다.

5·18의 실상을 담은 ‘죽음을 넘어 어둠을 넘어’(1985) 영문판 편집번역자 설갑수씨는 이 부분에 대해 은퇴 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고향에 있는 허철선과 접촉해 구체적 증언을 들었다. 허철선은 부상자 X레이를 확보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때 탄환은 알려진 HP탄이 아닌 FMJ탄이다. 인체에 맞으면 작은 파편이 퍼져 완전 제거가 불가능하다”며 X레이 사진과 함께 메일로 답했다. 당시 우리 군은 풍산금속 FMJ탄을 썼다.

허철선은 사택 지하의 X레이를 통해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했다. 한데 정보가 새어나가 압수수색 위기에 놓였다. 광주기독병원으로 후송된 부상자를 위로하러 온 경기도 수원의 목사가 전두환 측에 밀고했다는 증언이다. 영어가 유창한 인물이었다. 허철선은 중요하지 않은 사진만 남기고 깊숙이 숨겼다. 쿠데타군이 선교사 사저를 뒤져 국제여론을 악화시키지 않으려고 집행하진 않았던 것으로 훗날 분석됐다.

며칠 전. 전두환 광주재판 출석을 지켜본 허철선 아내 마샤 헌틀리가 그해 5월 21일과 22일 자행된 헬기 사격 목격을 재증언했다. 그들이 고양이를 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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