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전술’이란 말이 유행한 지 벌써 26년째다. 주지하다시피 이 용어는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미국과의 체제보장 협상에 나서는 북한의 전술을 의미한다. 북·미 핵 협상의 시작은 1994년이었다. 김일성 주석 시대였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시절이다. 위성 궤도에 촘촘히 박힌 미국 첩보위성이 보란 듯 북한은 평안북도 영변에서 핵원료를 농축하고 핵실험장을 건설하던 때다. 비둘기파였던 클린턴 행정부는 핵 개발을 동결하는 대신 경수로 원자력발전소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7년 동안 잠잠하다 2002년 10월 다시 핵 위기가 곪아터졌다. 평양을 방문했던 제임스 켈리 미국 북핵특사가 “북한이 합의를 어기고 영변 원자로에서 핵무기용 원료를 축적하고 있다”고 하자 북한은 두 달 후 아예 핵무기용 원료인 폐연료봉 봉인을 제거해 버린 것이다. 김 주석의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였고, 미국은 북한을 ‘불량정권’이라 부르던 조지 부시 행정부 때였다. 우리 정부가 아무리 둘 사이에 윤활유를 쳐도 북·미는 정반대편으로만 치달았다.

당시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비둘기 전략을 한 수에 뒤집은 사람이 바로 존 볼턴 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이다.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보였던 그는 공화당 신주류 ‘네오콘’(Neo-Conservatist·신보수주의그룹) 핵심이었다. 네오콘은 미국에 반하는 정권은 전쟁으로라도 제압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정파였고, 제2차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주도했다. 켈리가 던진 말도 볼턴이 채집한 정보에 기반했다는 게 당시 미국 조야의 정설이었다.

더구나 볼턴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이 조지 부시 행정부가 침공을 감행토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지난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얼개그림 역시 볼턴이 짠 것이란 평가가 많다. 회담의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한다 해도 미국 국익에 반하는 합의엔 절대 사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북·미 협상의 핵심은 매우 단순하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면 미국은 정상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편의와 경제적 원조, 정치적 후원을 북한에 무한대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대가가 큰 만큼 미국은 확실한 핵 개발 포기의 증거와 검증, 절차를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이 영변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여전히 핵무기 개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 북한은 아직 이마저 양보하고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재의 상태로는 양자의 간극을 좁히는 게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볼턴으로 대표되는 미국 내 대북 강경파의 정보력과 의지는 트럼프 대통령도 꺾을 수 없을 만큼 완강하기도 하다.

26년 동안 북한의 벼랑끝 전술을 경험한 미국은 호락호락 넘어갈 상대가 아니다. 미국으로선 94년부터 9년 동안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고 석유를 제공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경험도 결코 잊지 않을 게 틀림없다.

이런 판국에 나온 “북·미 간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양쪽 모두에서 이익인 합의)이 가능하도록 중재하겠다”는 청와대의 제안은 공론(空論)에 그칠 개연성이 더 높아 보인다. 핵 협상에 관한 한 북·미는 지난 26년 동안 남한을 당사자로 여기지 않았다. 햇볕정책이라는 대북 전략의 기본 얼개를 공유했던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가 6자회담 등을 통해 온갖 중재 노력을 했지만 실패에 그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북·미는 핵심 의제가 서로 완전하게 충족되지 않으면 합의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여기고 있다. 굿 이너프가 아니라 ‘베스트(best)’가 될 때에만 서로 최후의 악수를 하겠다는 것이다.

신창호 토요판 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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