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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는 엄마와 별개의 생명체… 자기결정권의 대상 아니다

낙태죄 논란의 허와 실


모든 인간이 귀하고 평등하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관념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현대사회의 보편적 가치다. 자궁 속에 있는 태아도 인간과 동등한 생명체이므로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최근 낙태죄 폐지와 관련한 논의에서는 이처럼 고귀한 인간의 가치가 송두리째 무시당하고 있다. 지난해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서는 조사 참여 여성의 75%가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 것으로 발표됐다. 낙태를 찬성하는 쪽뿐만 아니라 여러 언론매체에서도 이 조사결과가 낙태죄 폐지를 뒷받침하는 근거인 것처럼 본질을 오도하고 있다.

하지만 낙태 허용 여부에 대한 논의는 ‘인간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바탕을 둔 매우 전문적인 분야에 속한다. 여론조사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선례도 있다. 2004년 생명의 정의와 관련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때, 정부는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생명과학에 문외한인 일반 국민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할 성격의 법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낙태반대운동연합(낙반연) 관계자는 “생명에 관한 법률은 생명과학의 관점에서 전문가가 답을 주고 그 법에 따라 국민들이 태도를 취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낙태죄에 대한 법률도 마찬가지다. 생명의 법칙에 따라 낙태 허용 여부가 결정돼야지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여론에 기초해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어머니 자궁 속의 태아가 존중받아야 하는 생명으로 인식된 계기는 의학의 발달에 의해 마련됐다. 1803년 영국의학협회와 1821년 미국 코네티컷주 산부인과학회는 태동이 있는 때부터 태아는 인간과 유사한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이때부터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낙태금지법이 제정되기 시작했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태아가 생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임신된 배아 또는 태아가 독립된 생명이라면 출산 여부를 여성이 개인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낙태죄 폐지론자들은 ‘태아는 인간이 아니며 내 몸의 세포 조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마음대로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는 종교적·윤리적인 주장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제시한 것이다. 과학에서는 생명의 필수요건 4가지, 즉 물질대사(Metabolism) 여부, 성장 여부, 자극에 대한 반응 여부(호르몬에 대한 반응도 포함), 재생산 속성 여부를 갖고 생명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태아는 이 네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므로 생명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태아는 수정된 순간 유전자배열이 완성되며 성별과 머리색, 신체의 각종 특징들이 결정된다. 동물과 동일했던 유전자가 자궁 내에서 자라며 인간의 유전자 배열로 변이되는 게 아니다. 부모와 다른, 신체적 특징을 가진 별개의 인간이 수정 순간에 이미 이뤄지는 것이다. 따라서 수정되는 순간부터 생명이다.

낙반연 관계자는 “태아가 단순 유기물이 아니라 수정된 순간부터 인간생명이라는 점, 낙태되지 않는다면 성장을 멈추지 않는 생명체라는 점을 과학적 사실들이 증명해주고 있다”며 “만약 이러한 증거들을 부인하고 태아가 생명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낙태죄 논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결구도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프레임이라고 전문가들은 못박는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가치 기준이 서로 다르다.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닐 뿐만 아니라, 둘 다 독립적인 영역으로 보호받아야 할 가치다.

이를 위해서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영역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생명은 자기결정권을 갖지만 그 영역은 자신에게 속한 부분에 한정돼 있다. 즉 개인의 자기결정권은 무한정 보장되지 않으며 한계가 있다.

태아는 여성의 자궁 속에서 일정 기간 보호 기간을 거치지만, 모체와 별개의 생명체라는 게 명백하기 때문에 자기결정권의 대상이 아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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