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종합시장과 평화시장을 잇는 청계천 버들다리 보도에 상반신 형태의 동상이 서 있다. 작업복 차림의 이 청년은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고(故) 전태일(1948~70) 열사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인근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시다(보조원), 재단사로 일하며 개발 시대 노동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당시 일대에 밀집했던 봉제공장들에서는 10대 중·후반 여공들이 커피 한 잔값인 50~70원의 일당을 받고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먼지 투성이의 다락방에서 일하다 병에 걸리고 부당하게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전태일은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재단사가 되어서도 여공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백방으로 뛰었다. 그러나 사업주와 행정 관청의 거듭된 무시, 외면으로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보이지 않자 70년 11월 13일 스물두 살의 나이에 자신을 불살라 죽음으로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했다. 그의 분신은 고달픈 노동을 숙명이라 여겨 온 노동자들을 각성시켰고 노동 현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그후 평화시장 일대는 노동운동의 상징적 공간이 됐다. 2005년 9월 30일 버들다리에 전태일 열사의 동상이 세워졌고, 2012년 11월에는 버들다리를 전태일다리로 명명했다. 평화시장 초입에는 열사가 분신한 장소임을 알리는 동판이 설치됐다. 최근 이 부근에 열사를 기리는 시설이 또 들어섰다. 전태일다리에서 1.5㎞가량 떨어진 수표교 인근에 서울시가 조성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이다. 다음 달 정식 개관에 앞서 지난 20일 미리 문을 연 기념관은 지상 6층 규모다. 1~3층은 전태일기념공간, 4~6층은 노동자권익지원시설이다. 정면 외관이 특히 눈길을 끈다. 1969년 12월 열사가 근로감독관에게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 줄 것을 요청하며 보낸 편지 전문이 육필 원고 형태로 디자인돼 있다.

내년이면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된다. 그동안 노조가 속속 결성됐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대기업, 공공기관 등을 중심으로 임금과 후생복지 등이 개선됐다. 그러나 노조 조직률은 10% 남짓이고 비조직·비정규직·여성·청년 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여건에 놓여 있다. 전태일기념관은 이들처럼 힘 없는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노동운동, 이를 위한 노동자 간 연대를 고민하고 모색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그게 열사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는 길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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