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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삼십팔 년 된 병자

요한복음 5장 2~9절


예루살렘 성에는 다양한 문이 있었습니다. 성의 동북쪽에는 양을 사고파는 시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옆의 문을 ‘양문’이라고 불렀습니다. 문보다 유명한 것이 바로 베데스다라는 이름의 연못이었습니다. 베데스다의 뜻은 ‘자비의 집’입니다.

그곳에는 많은 병자가 있었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과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연못의 물이 움직이기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천사가 가끔 연못으로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물에 들어가면 어떤 병에 걸렸든 나을 수 있다는 말이 있어서죠. 병자들의 소망은 오직 하나입니다. 깨끗하게 병이 낫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삼십팔 년 된 병자’도 기적을 바라며 연못 근처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 많은 병자가 모여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치유받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우리는 어떻습니까. 병이 생기면 병원을 찾습니다. 유명한 의사를 수소문해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특정 질병을 잘 치료하는 의사에겐 특진도 신청합니다. 나을 때까지 계속 의사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치료비가 떨어지면 더는 병원에 갈 수 없죠. 그러는 사이 병은 악화하기도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 근처에 있던 환자들의 마음도 그랬을 것입니다. 나을 수 있다는 소문에 기대 연못을 찾아온 것이죠. 더는 기댈 곳도 없는 이들이 치유의 기적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데스다의 뜻이 자비의 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자비를 엿볼 수 없어서죠.

가장 큰 문제는 연못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만 치유된다는 사실입니다. 물이 움직일 때만 기다리다 재빨리 달려가 물로 뛰어들어야만 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셈이죠. 모두가 달릴 준비만 하고 있습니다. 삼십팔 년 된 병자도 기대와 상실감 속에 긴 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애절했을까요. 눈앞에서 치유하는 사람들을 보기만 할 뿐 자신은 긴 세월 환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걸을 수조차 없는 병자가 뛰는 건 불가능합니다.

배려가 없는 베데스다 연못엔 연못으로 달려가기만 준비하는 환자들이 즐비합니다. 양보란 있을 수 없죠. 치유의 방법도 알고 그 장소에도 찾아왔지만 기회를 잡을 수 없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이 환자의 하루하루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희망이 수시로 절망으로 바뀝니다. 자비의 집에서 자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뛸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자비가 야속할 뿐입니다. 자비는커녕 냉혹한 공간이었죠.

절망 속에서 죽어가던 병자의 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병색이 짙은 환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앞서 병자는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기적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병자는 그 말씀을 믿고 일어나 걸었습니다. 본문에선 치유의 순간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베데스다 연못엔 자비가 없었습니다. 이름만 자비의 집이었을 뿐 진정한 자비를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이죠. 모든 게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 살아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말씀의 기적보다 천사가 다녀가는 순간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나요. 혹시 내 주위에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뒤로한 채 나는 먼저 갈 수 있다며, 혹은 뛸 힘이 있다며 교만하지는 않을까요. 우리의 삶과 주변을 돌아봐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사라진 이 시대에 생명의 구주께서 선포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오직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임현주 목사(서울 항상기쁜교회)

◇서울 강서구 개화동 항상기쁜교회는 2011년 설립됐습니다. ‘praise church’라는 영어 이름도 가지고 있는 교회는 언제나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가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성경 읽기 모임이 교회의 시작이었으며, 이런 전통으로 교인들은 성경을 읽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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