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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수 목사의 생명사역 목회] 고난에 ‘십자가 사랑’으로 반응할 때 성숙한 사역자로 성장

<11> 고통을 은총으로 바꾸는 사역

권성수 대구동신교회 목사가 지난해 4월 대구 수성구 교회에서 개최된 ‘제4회 생명사역 콘퍼런스’에서 목회현장의 고통과 시련을 은총으로 바꾸는 생명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구동신교회 제공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생명사역 콘퍼런스 소감문들을 읽다 보면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토로하며 이와 같은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렸다는 내용을 종종 접한다. 어떤 목회자는 여러 고난 속에 있으면서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다고 고백했다. 다른 목회자는 교회 안팎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지쳐 있다고 술회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왜 고통을 허락하실까.

그들뿐 아니라 나도 이와 같은 기도를 올려드린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여러 가지 고통을 주셨는데, 그중 유학시절부터 나를 괴롭혔던 것이 바로 건강 문제였다. 유학시절에는 역류성 위염과 십이지장궤양으로 인해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잠도 잘 수 없었다. 사역하는 교회의 성도들이 교역자를 섬기는 마음으로 건네주시는 바비큐 고기 한 점이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고기 한 점도 목구멍으로 잘 넘기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바늘로 뱃속을 콕콕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성수 목사

유학을 마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 전임교수가 되었을 때 가장 걱정스러웠던 게 바로 건강 문제였다. 유학 생활 6년 동안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으로 과연 한 시간이라도 강의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나약해진 몸의 기력을 보완하기 위해 아내가 챙겨주는 건강식품과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나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내 몸을 회복시키기 시작하셨다. 기력이 점차 회복됐고 식사도 잘할 수 있게 됐다. 90분 강의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지치지 않고 너끈히 해낼 수 있는 체력을 허락하셨다. 나중에는 정해진 수많은 강의는 물론이고 강의 외에 더 알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해 추가로 마태복음 강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체력을 주셨다. 게다가 수많은 설교와 특강의 기회를 주셔서 전국교회를 누비며 영향을 미치는 자로 세워주셨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나는 고통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으시는 그분의 손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생명사역을 하다 보면 항상 꽃길만 걷는 게 아니다. 생명사역을 하면 마음을 같이 하는 성도들도 있지만, 염소처럼 들이받는 교인들도 만나게 된다. 그런 교인을 대하면서 미워하고 배척하면 생명사역은 본질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생명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마태는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고 기록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보시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다. 따라서 생명사역은 생명사역을 방해하고 들이받는 성도들도 기꺼이 품고 축복하며 훈련해야 성공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에서, 특별히 생명사역을 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을까. 티모시 레인과 폴 트립의 공저 ‘사람이 어떻게 변화되는가?’(How People Change)에 ‘세 그루의 나무’(그림)에 대한 설명이 있다.

위쪽에 이글거리는 태양이 있다. 작열하는 태양으로 인한 더위는 우리의 현실을 나타낸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는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 태양 밑에 나무 세 그루가 나온다. 하나는 열매나무, 다른 하나는 가시나무, 그리고 중앙에 십자가가 있다. 숨 막히는 태양의 열기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열매나무가 될 수도, 가시나무가 될 수도 있다.

오른쪽은 가시나무다. 가시나무는 혈기 불평 고집이라는 반응으로 형성된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 누가 그것을 지적하면 일단 부인한다. 문제를 회피하고 책임을 떠넘기며 때에 따라서는 완악하게 버티기도 한다. 이것이 가시나무의 반응이다.

가운데는 십자가다. 가시나무 반응을 열매나무 반응으로 바꿀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사랑에 부딪히는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이다. 우리의 마음이 십자가의 사랑에 부딪힐 때 열매나무 반응이 가능하다.

왼쪽은 열매나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열매나무 반응이다.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께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신다.(갈 5:22~23) 동일한 시련이 유혹을 통해 범죄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또 한편 성숙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시련을 겪어도 성령을 통해서 내 속에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다.

현재의 아픔은 미래의 열매다. 고통을 뒤집으면 하나님의 은총이 있다. 진흙 그릇을 햇볕에 그대로 두면 그저 천한 진흙 그릇으로 남을 뿐이지만, 풀무 불을 통과하면 귀한 도자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진흙 그릇 같은 우리가 풀무 불과 같은 시련과 아픔을 통과하면 아름다운 도자기와 같은 성숙한 생명사역자로 성장한다. 시련 앞에 무릎 꿇지 말고 시련을 견디는 열매나무 반응을 이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생명사역자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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