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만큼 괴롭고 고민 많은 이도 없을 것이다. 과장을 좀 섞자면 그는 최근 천당과 지옥을 번갈아 오가고 있다. 지난달에는 누구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안이 극적으로 도출됐다. 하지만 형식적 절차쯤으로 여겨졌던 본위원회 의결이 비정규직·청년·여성 노동계 3인 대표의 불참으로 실패했다. 힘들게 만든 합의안은 별 힘을 받지 못했다. 문 위원장은 “감당하지 못할 충격”이라고 했고, 야당 의원들은 간판을 바꿔 달고 출범한 지 4개월 된 경사노위를 향해 ‘무용론·해체론’을 들고나왔다.

탄력근로제에 관심이 집중됐던 건 그 합의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었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경사노위가 논의 중인 여러 의제 중 노사 간 이견이 가장 첨예했던 사안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경영계와 노동계가 서로 한 발씩 양보한 절충안이 도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정부의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에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당시 본위원회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려 했을 정도였다. 이런 합의안이 일부의 불참으로 의결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쳤으니,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여기서 잠깐 숨을 고르고 실패의 원인을 복기해 보자. 돌이켜 보면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논의는 애초부터 결론이 정해져 있었다. 국회는 지난해 말 경사노위에 탄력근로제 합의를 부탁하면서 2월을 시한으로 제시했었다. 합의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국회가 논의할 수밖에 없다는 압박도 곁들였다. 여야 할 것 없이 이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안이 우후죽순 발의돼 있었다.

노동계에서 유일하게 논의에 참여한 한국노총은 이런 압박 속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밖에 없었고, 논의에서 배제된 나머지 노동계 단체 대표들은 이런 합의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이는 1998년 출범 이후 여러 차례 반복됐던 사회적 대화의 실패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는 꼴이다. “그동안의 사회적 대화가 정부 정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았는지, 충실한 협의보다 무리한 합의를 강행함으로써 빈번한 파행을 겪지 않았는지, 비판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문 위원장이 경사노위 출범 때 내걸었던 다짐이 무색해지는 지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 주체의 다양화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중이다. 그간 양대노총(민주노총·한국노총)과 경영계 대표(경총·대한상의)가 노동자와 사용자 전체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지적 속에 비정규직·청년·여성, 중소기업·중견기업·소상공인 대표가 새롭게 대화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주체들은 본위원회에서 의결권을 가질 뿐이다. 탄력근로제를 논의한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합의안에 대해 비공식적인 설명을 한두 차례 들었을 뿐이다. “우리가 거수기냐”는 노동계 대표 3인의 불만에도 일리가 있다는 얘기다.

고려대 박지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제별 위원회에 모든 주체를 참석시킬 수 없다면 최소한 본위원회 의결을 하기 전 합의안에 관해 토론하고, 수정할 기회를 줬어야 한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다양한 대화 주체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겠다는 게 경사노위의 지향점 아닌가”라며 아쉬워했다.

경사노위는 이런 예상치 못했던 허점들을 서둘러 개선해 나가야 한다. 경사노위는 노사정이 모두 참여하는 우리 사회의 유일한 대화 경로다. 탄력근로제 외에도 논의해 봐야 할 의제가 수두룩하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연금 구조 개혁, 한국형 실업 부조 도입 등 대부분의 노동·사회 핵심이슈들이 경사노위 각 분과에서 논의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넘기기 힘든 것들이다.

마침 지난주에 노동계 계층별 3인 대표는 문 위원장에게 개선점을 명확히 밝혔다. 그들은 “향후 의제별 논의 및 의결과정에 참관 및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사노위는 참여자들의 보이콧을 무력화할 의결구조 개편을 논의하기 전에 이들의 요구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한다. 개선작업이 늦어질수록 경사노위 무용론이나 해체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현수 경제부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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