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부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2부 : 공동체 균열 부르는 ‘신계급’>
<3부 : 한국을 바꾸는 다문화가정 2세>
<4부 : 외국인 노동자 100만명 시대>
<5부 :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법>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정 2세들에게 편견과 차별, ‘공동체에서의 배제’는 응당 겪어야 할 숙명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만연한 인종적 편견과 보이지 않는 차별에 맞서 고난을 헤치고 성공을 이룬 이들에게 합당한 찬사를 보내고 그간의 무지를 반성하는 분위기도 점차 확산되는 듯 보인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각각 만난 모델 한현민(18)군과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란 출신 김민혁(16)군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 혼혈 패션 모델로 인기 한현민군
“어릴 적 놀림 당한 피부색 모델로는 오히려 경쟁력”



‘국내 최초 혼혈 흑인 패션모델’ ‘차세대 엔터테인 유망주’. 한현민군에게 붙은 수식어다. 그는 데뷔 1년6개월 만인 2017년 9월 국내 최대 패션 행사인 서울패션위크에서 20여개 브랜드의 모델로 무대에 섰다. 같은 해 11월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최근 각종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기를 한몸에 얻고 있다. 하지만 그의 ‘다른 피부색’이 사람들이 찬사를 받기까지는 많은 시련이 있었다.

그는 한국인 어머니와 무역업을 하던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또래 아이들이 던진 모래 등으로 인해 얼굴 성한 날이 거의 없었다. 어떤 아이는 침을 뱉기까지 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진 폭력이었다. 공격적 차별은 철부지들만 행한 것이 아니다. “까만 애랑 놀지 마.”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친구의 엄마가 했던 그 말은 오랫동안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저에게 ‘너는 특별하다. 언젠가는 꼭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해주셨어요. 그 말이 제게 많은 힘이 됐습니다.”

학창시절 야구 축구 달리기 등에 두각을 나타내던 한군은 운동을 매개로 친구들과 점차 가까워졌다. “친구들이 ‘쟤 운동 좀 한다’며 무리에 끼워주기 시작했고 나중엔 제가 먼저 축구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모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중학생 때다. “평소 스스로 리폼을 해 입을 만큼 옷을 좋아했어요. 그때 같은 중학교 선배가 모델 기획사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호기심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그를 받아주는 기획사는 없었다. 온라인 쇼핑몰의 피팅 모델을 하던 그가 패션쇼 무대에 데뷔하게 된 것은 SNS에 올린 사진 한 장 덕분이다. 현 소속사인 SF엔터테인먼트 관계자가 우연히 이 사진을 보고 그에게 연락을 했다. 서울 이태원거리 한복판에서 테스트를 받은 뒤 곧바로 계약했다.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아서 남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두려워했어요. 때문에 처음 패션쇼 무대에 설 때도 무척 떨리고 긴장했지만 어느새 제가 그 시선을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릴 적 놀림의 소재였던 피부색이 모델로서는 오히려 경쟁력이 됐다. 여기에 자신감 있고 낙천적인 성격, 온라인 게임과 운동에 열광하는 모습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10대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심어줬다.

한군은 더 유명해지고 싶다고 했다. 단, 그 목적은 차별과 편견 철폐에 있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꼽았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들을 경계하는 분위기는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 제2 한현민 되겠다는 김민혁군
“난민 출신 1호 모델 꿈꿔 소외된 이들 돕고 싶어요”



롤모델로 삼은 한군이 앞서 같은 공간에서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에 김민혁군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편견에 너무 상처받지 말고, 혹여 약점이 될 수 있는 다름을 자신만의 강점으로 만들어 꼭 성공하길 바란다’는 한군의 응원 메시지가 큰 힘이 된 듯 보였다.

유창한 한국말로 자신을 소개한 김군의 첫 인상은 당찼다. ‘난민’이라는 다소 특수한 상황에 놓였지만 얼굴이 알려지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었다. 김군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떳떳하게 생활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란 출신인 김군은 지난해 10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김군의 아버지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하며 1988년부터 서울을 오갔다. 2010년에는 자녀의 교육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아들인 김군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다.

김군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인 2012년 친구들의 권유로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2013년 김군이 이란 현지의 친척과 통화하다 자신도 모르게 ‘성당에 갔다’고 말하면서부터 발생했다. 이란에서 개종은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중죄다.

개종 소식이 알려진 만큼 김군이 이란으로 돌아갔을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자 아버지는 2014년부터 아들을 따라 성당에 나갔고 약 8개월간의 교리 공부를 거쳐 가톨릭 세례 성사를 받았다.

김군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도록 도운 건 중학교 친구들이다. “친구들은 제가 이란으로 돌아가 박해받을 위기에 처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정한 심사를 받아 난민으로 인정되게 해달라’는 글을 올렸어요.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김민혁’이라는 이름은 친구들이 지어줬다. 성씨가 너무 평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워낙 특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좀 평범해도 괜찮다”고 답했다.

김군의 최대 관심사는 아버지의 ‘난민 심사 인터뷰’다. 김군과 달리 아버지는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고, 현재 난민 재신청을 한 상태다. 김군은 한국 사회도 아버지를 보듬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난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권 국가 출신에 대한 편견으로 재지 말고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김군은 국내 난민 출신 1호 모델을 꿈꾼다. 그는 중학교 시절 교복 모델 콘테스트에 나가기도 했다. “한현민 형이 모델로 성공하면서 흑인과 혼혈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어요. 저도 난민 출신 모델로 성공해 한국에 있는 난민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꼭 없애고 싶습니다.”

또 다른 목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하는 것이다. “힘들 때 친구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같은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사회의 일원으로 보고 저를 도와준 거죠. 저도 그런 마음으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멸시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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