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철 (3) 어릴 적부터 아픈 사람에게 손대면 신기하게 나아

키 작은 열등감에 철학에 눈 돌려, 어머니가 원하던 의과대학 낙방…재수 핑계로 지리산 들어가 도 닦아

정철 이사장(앞줄 가운데)은 경기고 시절 학교 밴드부에서 활동하면서 트럼펫을 맡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작았다. 중학교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작은 키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자꾸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다 나중에는 열등감으로까지 발전됐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135㎝였고 2학년에 가니 150㎝였다. 그런데 그 후로는 잘 안 컸다. 1년에 1㎝ 정도 큰 것 같다. 키가 작아 반에서 출석번호 1번은 따놓고 살았다. 내 자리는 항상 교탁 앞자리였고 선생님들이 출석부를 휘두르면 항상 사정권에 들어왔다.

작은 키에서 시작한 열등감은 나를 철학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이 광대한 우주를 바라볼 때 그까짓 키 몇 센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음악에도 빠져서 한 달간 학교에 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철학 관련 책도 읽었다. 철학서 요약본들을 많이 봤다. 그러다 불교의 선을 시작했다. 불교 쪽 설법들이 마음에 들었던 탓이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생각해 요가 책도 읽었다. 현실 세계보다 공중에 뜬 얘기들이 더 끌렸던 것 같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 닦는 얘기들이었다.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많았다. 이렇게 나는 자꾸 이상한 철학세계로 빠져들었고, 참선 단전호흡 요가 등에 심취하며 본격적으로 도통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공부는 안 하고 이렇게 딴짓만 하고 있었으니 대학에 붙을 리도 없었다. 의과대학을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어머니가 의대를 가라고 해서 억지로 시험을 봤지만 별 흥미가 없었다. 어머니가 의대를 추천한 것은 내가 어릴 적부터 아픈 사람에게 손을 대면 신기하게 나았기 때문이다. 나도 신기했고 그 방면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무슨 배짱이 있어서 였는지 모르지만 대학에 떨어졌어도 크게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된 김에 산에 들어가 도나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집에서는 이미 천덕꾸러기로 살았다. 참선과 요가를 한답시고 보름씩 단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외아들이었던 내가 죽을까 봐 친척들까지 나를 말렸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지리산이었다. 집에는 절에 가서 대입 재수 공부를 하겠다 말하고 본격적인 입산수도를 시작한 것이다. 지리산은 도사들을 많이 배출한다고 해서 골랐다. 산속 암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전에 힘을 모으고 도를 닦았다. 암자에는 방 한 칸만 있었다. 밤이면 조금 무섭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주문을 외웠다.

자꾸 하다 보니 솜씨가 늘어서 내가 들어도 그럴듯하게 목탁까지 치면서 불경을 암송했다. 어느 날 내 독경소리를 들은 승려가 “목청이 좋다”며 절에 올라와 해보라고 시켰다. 녹음기가 없던 때였다. 그때부터 나는 사찰 행사 때마다 대웅전 옆방에서 독경을 하고 음식을 얻어 먹었다. 하지만 정작 도 닦는 공부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암자 주변엔 나처럼 수도한답시고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과 교제하면서 옛날 도사들이 공부하던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 고유 민속종교에 관한 여러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중흥시킬 수 있는 민족종교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촬영=장진현, 영상 편집=김평강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