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충격의 노딜(no deal)로 끝난 지 한 달을 맞은 시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 하나. 북한은 과연 핵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을까. 답변은 아무래도 부정적이다. 사실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확답에 가깝다. 1차 북핵 위기 당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현재 과거 협상 양태를 비춰 봐도, 또 앞으로 재개될지 모를 협상을 예측할 때도 여기에 대한 답변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북한식 표현으로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한반도에 미군의 전술핵이 배치된 1960년대부터 계속 주장해 왔던 명제다. 남북은 1992년 2월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핵이 존재하지 않는 땅으로 만들겠다고 합의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지금 봐도 그 대상을 명확히 구분했다. ‘남북은 핵무기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치,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1항) ‘남북은 핵 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3항)는 조항에 합의했다.

전문가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주장하던 북한이 이때부터 한·미 양국의 입장을 수용해 비핵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고 본다. 보수적인 전문가들은 그러나 ‘비핵화’ 표현은 북한이 용어상으로만 양보한 것일 뿐 북한의 핵무력 완성계획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어쨌든 이후 북·미든 남북이 포함된 양자, 다자회담에서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북핵 6자회담 공동성명, 2007년 2·13합의, 10·3합의 등 여러 합의가 이뤄졌다. 이들 합의는 비핵화(또는 비핵화를 위한 초기조치)를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합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지없이 파기됐다. 30년 가까운 기간 단 한 번도 비핵화에 근접했던 적은 없었던 것이다. 2008년 CNN 등 각국 방송사를 불러모은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2018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 역시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게 지배적 견해다.

그렇다면 지난해 문재인정부가 큰 의미를 부여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발언은 어떨까. 북한 지도자는 언제나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을 해왔고, 여기엔 전제가 붙어 왔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없어지면, 체제안전 보장이 이뤄지면, 대북 제재 완화가 이뤄지면 등이다.

이런 점에서 하노이 담판은 그동안 정부 스스로가 낙관론을 펼쳐왔던 환상이 깨지고 북·미 간 입장 차이가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낸 계기가 됐다. 비핵화 개념은 고사하고 북한이 폐쇄를 선언한 영변 핵시설 범위에 대한 합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는 북한의 모든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 폐기로까지 비핵화 범위를 확산시킨 트럼프 행정부와 동시적·단계적 상호조치를 고수하는 북측 간의 괴리가 좁히기 어려울 정도로 간극이 커졌다. 지금은 2년 전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 등 험한 말이 오가는 상황까진 가지 않았지만 상당 기간 극적 반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지금까지 반복해온 낙관론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과도하게 해석해선 안 된다. 지난해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이야 어느 정도 감성의 영역이 개입된 부분이 있다고 쳐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정권의 명운을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정부는 한국의 중재자(또는 촉진자) 역할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아마도 미국에는 ‘올 오어 나싱’ 전략 재고를 설득할 것이고, 북한에는 경협 등 이른바 당근을 통한 비핵화 이행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중재자 역할이 긍정적이고 전향적 결과를 가져올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오히려 북·미 양측으로부터 불신을 받는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이미 미국 조야에선 중재자 역할에 대한 냉소적 분위기가 감돈다. 중재자 역할은 현 상황을 냉철히 판단하는 데서 출발한다. 섣부른 낙관론자와 냉철한 중재자 역할은 양립할 수 없다.

남혁상 국제부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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