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브로커’로 불린 윤상림씨. 전형적인 호가호위 수법으로 인맥을 넓혀간 그의 수첩에는 법조인과 경찰관, 정·재계 인사 등 1000여명의 연락처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윤씨를 전격 구속할 당시 검찰의 기세는 대단했다. “거악을 뿌리 뽑겠다”며 “수사의 핵심은 윤씨 배후의 몸통을 찾는 일”이라고 공언했다. 청부수사 로비 대상과 배후를 밝히는 데 60여명의 수사팀이 동원됐다. 5개월간 윤씨와 관련자들의 계좌 등을 이 잡듯 뒤졌다. 하지만 몸통은커녕 깃털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채 수사는 마무리됐다. ‘윤씨 인맥을 감안하면 수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는 비관적 전망 그대로였다.

필자에게도 이 사건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수사가 한창이던 2006년 1월 경찰 고위간부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검찰 최고위층 인사와 윤상림이 호형호제하는 사이고, 같이 어울리는 모습도 목격됐다’는 내용이었다.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정황이 꽤 구체적이었다. 데스크에 보고했고, 경찰 고위간부가 “윤상림이 검찰 최고위층과 접촉했다”고 밝혔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갔다. 검찰은 강하게 반발했다. 후속 취재는 제대로 되지 않았고, 데스크뿐만 아니라 법조 담당 동료 기자들도 이래저래 곤욕을 치렀다. ‘검찰과 악연이 있는 경찰 간부의 언론플레이에 이용당한 건가.’ ‘검찰 지휘부에 대한 수사 여론을 막기 위한 조직적 움직임에 굴복한 건가.’ 13년이 지났지만 가슴 한편엔 여전히 의문들이 앙금처럼 남아 있다.

아무튼 이후에도 법조·경찰 브로커 사건은 잊을 만하면 불거졌다. 몇몇 건은 ‘봐주기 수사’라는 여론이 들끓자 연루 검사, 경찰관 망신주기 식으로 수사 방향이 바뀐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용두사미였던 전철을 밟았다. 특히 검경 고위급 인사 연루 의혹이 제기된 경우 ‘수사 안 했나, 못했나’라는 질책성 기사 제목으로 마무리되는 공식이 재연됐다.

6년 전 건설업자 윤중천씨 로비 의혹 사건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윤씨의 별장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 유력 인사들이 드나들었다는 정황이 드러났지만 결국 윤씨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사법처리는 일단락됐다.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 국민의 힘으로 상황은 변곡점을 맞고 있다. 반복되는 제 식구 감싸기 수사에 대한 불신은 분노로 이어졌고, 수위가 임계점에 다다르자 결국 대통령이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학의·버닝썬 사건 등에 대해 검찰, 경찰의 고의적인 부실 수사와 조직적 비호 의혹을 낱낱이 규명할 것을 지시했다.

분위기가 바뀌고 법망을 피하기 힘들어질 것 같아지자 갑자기 상황은 코미디로 흘러갔다. 성공한 젊은 사업가 이미지를 쌓아가던 가수 승리 등은 갑자기 바보 행세를 했다. 비호 인사로 지목된 경찰 총경은 밥을 사주며 조언해주는 고마운 형이었고, 자신들은 ‘경찰 총경을 경찰총장으로 아는 상식 이하의 수준’이라는 자조를 늘어놓았다. 김 전 차관은 한밤중에 변장한 채 태국으로 출국을 시도하다 저지당했다. 정한중 법무부 과거사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을 뭐로 보고 그러셨느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앞으로 이어질 검경 수사에 대해 건건이 대통령이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나서는 게 맞지도 않다. 시스템을 바꾸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검경이 거악을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이 거의 없고, 권력형 비리 수사를 검경의 선의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커졌다는 것은 곧 현재 시스템에 큰 결함이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공수처가 정치적으로 독립된 수사기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와 복잡하고 교묘한 고위공직자 비리를 과연 공수처가 수사할 능력이 될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다른 대안이 없다면 이제 의문과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공수처 설치안을 국회가 만들 때다.

한장희 사회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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